에휴. 그래라~
포기를 잘한다.
진짜 잃을 수 없는 것 몇 가지 빼고는
그래 내려놓자~
하고 포기가 가능하다.
어찌 보면 상황을 회피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포기할 수 있다면 애초에 그래도 될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북 소개에 이혼녀라고 적었다.
되려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돌싱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안 드는 점은
돌아온 싱글 이란 말이
이혼의 무게감과, 현실을 너무
미화시킨다는 생각에서다.
(본인이 돌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책임감 없게 구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럴 수도...)
그리고 싱글맘이란 표현은,
혼자 애써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어울릴 것 같다.
나에게는 과분한 표현이다.
나는 엄마의 도움을 너무나도 받고 있어서,
혼자 키운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혼녀. 이혼자라는 말이
내게 맞다고 판단한다.
나는 자기 연민의 감정을
극도로 싫어한다.
내가 이혼을 하게 된 것?
결국은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의 선택은 내 스스로 했기에,
이별을 결심한 그 순간조차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다.
이혼을 결심할 때 내 바람은 하나였다.
아이 아빠가 스스로를 돌보며,
1인분의 몫을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말이다.
건강한 삶을 사는 아빠의 모습만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무한한 애정,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이
못되었다. 그걸 깨달은 뒤로
이 관계의 끝에 어떠한 미련도 남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어떤 관계를 쌓으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이제 남편으로써 기대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하였고, 오로지 아이아빠로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 볼 수 있었다.
그가 어린 시절 홀로 한 유학생활과 지금 닥친 현실이
안타까운 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30과 40의 나이가 넘었고
본인의 현재에 충분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남의 탓은 더 이상 핑계가 되지 않는다.
아이아빠와 이런저런
상의가 필요하여
연락을 할 때가 있다.
그가 말하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아
속이 부글거릴 때도 정말 많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분노일지 연민일지 모르는
그 감정의 스위치가 켜지려는 순간은
내 스스로 알 수 있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애써 감정의 버튼은 내린다.
그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 태도는 내가 바꿀 수 없었다.
하물며 혼인생활 중에도 그랬는데,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냥 그래라~
하는 마음으로 또 한 번 내려놓는다.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뿐.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내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내가 더 건강해야 하고
결국 그래서
내가 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이렇듯
그와의 모든 일들에는,
결혼생활의 끝에는,
결국 내가 서있었다.
내가 내린 모든 선택의
끝에는,
결국 내가 서있다.
그래서 또
다짐하는 매일.
그래서 또
다짐해 보는 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