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중 하나
나의 하루는 뭉그적거리지도 못할 만큼 어려움 없이 눈을 뜬다. 오전 7시. 오늘은 시작이 좋다. 얼마 전 이른 네시에 눈을 떠버린 아침에 비하면. 시간을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일어나지 못한 채 이불속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스스로를 고립했다. 달콤한 게으름과는 다르다. 아주 불편하고 어제와 같은 한심한 나를 다시 마주한다.
나는 캐나다에 살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겨울이 아주 길고 해는 곁을 내어줄 생각을 않는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의 대화에 요즘 에너지가 부쩍 달린다는 말을 했더니 이곳에선 비타민D를 먹어야 이겨낸다며 얄밉게도 타당한 답을 내어줬다. 그래 내가 이런 것은 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믿으려 했다. 그런데 나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슬퍼하며 베개를 적시고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다.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 해가 없어서 마음이 이런 것이지. 뭔가 그리워서 이러는 게 아니라, 뭔가 텅 비어서 그런 게 아니라 네가 두려운 건 썩 마음에 들었던 나 스스로가 잊혀 가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 이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와 슬픔은 다 해 때문이라고 밀어버렸다. 해가 뜨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다시 건설적인 생각을 해서 니 미래를 니 앞가림을 위한 수를 쓸 때이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2022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해 겨울 할머니도 함께 가셨다. 정말 단 한 가지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직장동료가 씁쓸한 표정으로 늦기 전에 얼른 가서 찾아봬야 한다는 담담하고도 무거웠던 그 말의 무게가 그제야 전해졌다. 나도 그처럼 너무 늦어버렸다. 친한 친구가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았다. 함께 할 수 없는 미안함이 더 컸지만 넉넉지 못한 사정으로 축의금도 마음껏 하지 못했다. 결국엔 또 다른 미안함이 함께 생겨버렸다. 나이를 먹으면 더 단단해지고 무뎌진다던데 2019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자신감 있었던 마음으로 한국에서 단단해진 채로 나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채로 이곳에 와서 참 다행이라며 안심했던 나는 희미해져 간다. 내가 자신감 넘칠 수 있었던 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가족들의 품과 내 모든 것을 공유한 내 친구가 있어서였다. 건방진 나는 내가 가졌던 모든 것이 나 스스로 이겨내고 깎이며 얻은 것이라 자부했다. 어릴 적 나에게 오래도록 공생했던 우울감과 패배감이 다시금 보이기 시작한다. 무섭다. 그런데 무섭다고 말할 곳이 없다. 나 힘들다고 알릴 곳이 없다. 자신감 넘치고 실실거리며 가볍게 잘 웃던 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잔뜩 젖어 비 맞고 있는 나를 보여줄 수 없었다.
오늘 해가 떴다. 오전부터 지금까지 오래도록 떠 있다. 집 안까지 스며들어 비춘다. 방전되었던 노트북을 다시 열어 글 쓸 곳을 찾았다. 조금씩 희석되는 중이다. 마음이 조금은 잔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