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점심을 먹는다면

정용준 <선릉 산책>

by 페이지

음식점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덩치는 큰데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청년 때문이다. 청년은 돈가스를 통째로 들고 뜯었고 입 속에 음식이 차있는데도 음식을 욱여넣다가 괴성을 지른다. 일행인 듯 보이는 사람이 말리려고 노력했지만 청년은 바닥에 누워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을 친다.

소란을 피우고 있는 청년은 이 소설에 나오는 한두운. 그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밥을 먹고 있는 식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떤 시선으로 두운이 있는 테이블을 바라볼까.




타인에 대한 이해는 어느 범위까지 가능할까. 완벽한 이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니 가능치라도 잡아본다면,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으며 얼마나 이해될 수 있을까. 반대로 타인이 나를 이해하는 범위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낯선 거리를 좁히는데 시간의 빈도가 해결해주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다. 처음에는 딴 곳만 바라보던 각자의 시선은 시간을 들이는 사이 조금씩 시선을 옮겨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렇게 거리를 좁혀가다가 내가 타인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시점이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나와 타인의 친밀함이 겹치는 시기가 동일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타인이 일상에서 만나던 사람들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일 때는 친밀함의 시점을 전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선릉 산책>에서 '한두운'에게 잠시나마 친밀함을 느꼈던 '나'의 혼란은 당연하다.

한두운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어쩌지?

밥 먹는 한두운을 보며 계속 그 생각만 하는 중이다. 처음엔 옆에 앉아 어떻게든 통제해보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말았다. 음식을 뺏거나 포크 든 손을 잡으면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손으로 돈가스를 통째로 들고 뜯었고 목덜미와 셔츠로 흘러내리는 소스와 국물을 닦아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입 속에 음식이 가득 차 있는데도 음식을 집어넣었다. 들어가지 않으니 욱여넣으려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구역질을 했다. 나는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고 멍하게 지켜만 봤다. 음식점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 쪽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난감한 얼굴로 부탁을 하던 점원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조용히 시켜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에서 음식을 빼앗고 접시를 치웠다. 한두운은 바닥에 누워 더 크게 소리 질렀다. 나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거의 울듯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 <선릉 산책> 중


'나'보다 한 뼘 정도 큰 키에 몸무게는 육십 킬로그램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마른 한두운. 어린아이처럼 무구한 표정에 잔근육이나 튀어나온 어른의 몸을 지닌 그는 스무 살 청년이다. 머리에는 헤드기어를 쓰고 등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는다. 모두 자폐를 앓고 있는 한두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이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일식집에서 한두운은 엄청난 식탐을 보였다. 아무리 말려도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를 돌보는 일이 쉬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몰랐다.


평일에는 이모의 돌봄을 받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누군가에게 맡겨져 돌봄을 받는 한두운.

'나'는 평소 알고 지내던 우진의 부탁을 받아 한두운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한 시간에 만 원짜리 아르바이트.

주저하는 '나'에게 우진은 하루만 봐달라고 거듭 부탁을 한다.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어서 부탁하는 거라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맡겼다가 한두운이 이상한 놈들한테 나쁜 일을 많이 당했다고.

콜라에 수면제 타서 하루 종일 재우거나 집에 데리고 가서 방에 가둬놓거나 묶어놓고 기저귀를 채우는, 그런 놈들에게 나쁜 일을 당해도 한두운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사연을 듣고 '나'는 한두운을 돌보기로 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딱 아홉 시간 동안.


한두운을 돌보는 것에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다닐 것.

.......................................

대소변은 스스로 해결하지만 밥을 먹을 땐 옆에서 도와줘야 함.

식탐이 많음.


가끔 소리를 지르거나 도로변에 눕는 경우가 있음.

그럴 땐 달래거나 말을 걸지 말고 무조건 완력으로 일으켜 세워야 함.

혼을 내서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침을 자주 뱉음. 사람들이 절대 이해해주지 않음.

(이것 때문에 몇 번이나 싸울 뻔했음)


계속 말을 걸어주면 친해질 수 있음.

(혼잣말을 하게 될 것임.)

-<선릉 산책> 중


선릉역에서 만난 이후 두 사람은 선정릉에 들어가 산책하게 된다. 그곳이 마음에 드는지 한두운은 활기차게 걸어 다닌다. 접근 금지된 펜스를 가볍게 넘어가고 무덤 주위를 활보한다.

참도를 걸을 때 '나'는 팸플릿에 있는 안내문을 읽으며 가이드를 시작했다. 죽은 왕이 이용하는 신도와 살아있는 왕이 이용하는 어도로 나뉜 길에서 우리는 오른편에 있는 어도로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두운은 신도로 올라갔다. 내려오라고 하자, 한두운은 신도 위에 침을 뱉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그가 침을 뱉는 소리는 '쇠구슬처럼 마음의 안쪽을 강하게 타격'했다.


무더운 한여름 낮, 선릉 산책은 힘들었다. '나'는 한두운에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두운 씨는 무슨 생각 해?'라는 말에 한두운은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혼령이 걷는 신도를 보고 있었다. '죽은 왕이 걷고 있나요?'라고 말하다 '나' 스스로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한두운의 시선이 '물체의 궤적'을 좇듯 서서히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는 혹시 그런 것이 보이는 걸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나 죽은 것들 아니면 형상이 없는 것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무덤 주위를 걷는 그의 좀비 같은 움직임이 몽유병 환자의 그것처럼 보였다. 어딘가에 영혼을 두고 텅 빈 육체로 산책하러 나온 꿈 꾸는 남자.

-<선릉 산책> 중


일식집에서 난리를 피우며 점심식사를 마친 한두운을 데리고 다시 선릉 산책을 시작한 '나'는 그가 가끔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을 치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서 한두운의 목에 걸린 장애인 표식과 헤드기어를 벗겼다. 잠시나마 한두운을 자유롭게 해 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사건은 벌어진다.


헤드기어를 벗기자 발걸음이 경쾌하고 빨라진 한두운은 말을 시작했다. 처음에 '매미'라는 말을 한 뒤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녹음된 음성 파일이 재생되듯' '일정한 리듬과 운율로' 말하는 한두운은 나무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오리나무. 화살나무. 자귀나무. 전나무.

한두운과 '나'의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한두운의 말에 귀 기울였고 한두운은 '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반대방향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피해 걷는 한두운은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가볍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이 링에 서서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며 분투하는 아웃복서처럼 보여 '나'는 '파피용'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파피용과 나.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자 파피용인 한두운은 '응답하는 눈빛'을 보낸 다음 웃었다.

한두운과 '나' 사이가 친밀해지는 순간이라 착각하던 때였다.

여섯 시가 되면 '나'는 한두운과 헤어지게 된다. 그런 마음이 뒤섞여 홀가분하고 친밀한 마음이 더 들었다. 하지만 한두운의 보호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일이 생겼어요. 세 시간만 더 봐주세요.'


'세 시간을 더 봐달라'는 문자에 '나'의 친밀함은 짜증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렵하다고 느꼈던 한두운의 몸짓이 짜증났고, 음성파일이 재생되듯 목소리도 짜증났다. 그러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한두운을 놓쳤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 사이 한두운은 '불량스럽고 위험해보이는 청소년들'에게 침을 뱉어버렸다. 그들은 한두운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한두운은 한 대도 맞지 않고 '춤을 추듯 앞뒤로 빠르게 발을 움직'였고, '살기를 뿜으며' 노려보았다.

그들은 가면서 '나'와 한두운을 향해 모래를 뿌렸다. 한두운의 뒤통수에는 바나나 우유와 콜라가 쏟아졌고 주먹 크기의 돌멩이도 날아왔다. 그들은 침을 뱉듯 욕설을 내뱉었다.

"병신 새끼들."이라고.


선릉 산책을 하던 한순간 '나'는 한두운과 거리를 좁혔다고 착각했다. 그를 어느 정도 이해했으며 헤드기어가 그를 자유롭게 해 줄 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이 넘어간 순간, 마법이 풀리듯 착각은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나'의 눈에 비친 한두운은 아침에 봤던 것처럼 , 오히려 그보다 더 낯선 존재. 이상하고 짜증 나고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였을 뿐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은 내 자신에게 건네는 위안일 뿐이다. 더구나 자신이 타인이라고 부르는 자리에 한두운이 있다면 더욱더.


내가 사는 동네에는 걷다가 갑작스레 불쑥 얼굴을 내밀며 욕을 하는 청년이 있다. 주로 어머니와 둘이 다니는데 가끔 혼자 다닐 때도 있다. 어머니는 늘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며 사람이 있을 때는 아들을 붙잡아서 옆으로 함께 비켜선다. 마주칠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은 더욱 수척해져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저렇게 비켜서며 살아왔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청년이 갑작스레 얼굴을 내밀고 욕을 할 때 놀라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걸어가는 것 밖에 없다.

청년이 욕을 내뱉는 것은 한두운이 침을 뱉는 것처럼 그저 습관일 뿐이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습관.


앞서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소설 속에서 한두운이 일식집에 누워서 소리를 지르면서 멈추지 않을 때 '나'는 그의 '겨드랑이 밑에 손을 집어넣고 들어 올리는 척하면서 강하게 꼬집'어서 그를 잠잠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일식당을 빠져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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