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섬 릭스는 《미스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로 유명해진 작가로 기묘하고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를 많이 써왔다.
《기묘한 사람들》은 '미스 페러그린' 이전의 소설로 여러 지역에서 모은 설화에 상상력을 입힌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작품집이다. 그중 <아름다운 식인종>은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이 어떻게 일상을 파괴하고 경제구조를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피땀 없이 돈을 벌면서 소박했던 마을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따라가다보면 자본의 욕망이 확대될 때 나타나는 황폐한 세계의 이면도 조금씩 드러난다.
소설 속에는 우리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등장한다. '식인종과 식인'의 설정은 거대한 자본이 굶주린 나라를 집어삼키는 상황을 빗댄 설정으로 보인다.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의 운명을 점쳐보며 소박한 스웜프머크 마을로 들어가보자.
스웜프머크 마을에는 소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갈대로 지은 엉성한 집에서 살았고 화려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살았다. 날씨가 좋은 지역이라 텃밭은 풍성했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개울도 있었다. 마을의 유일한 특산품은 갈대였다.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습지에서 일했고, 추수 때가 되면 습지에서 자란 최고의 갈대들을 모아서 가까운 시장에 가서 팔았다. 하지만 스웜프머크는 아주 외진 곳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시장에 도착하려고 해도 당나귀를 타고 험한 길을 닷새나 달려야했다.
갈대를 추수하던 작업을 하던 중 농부 폴먼이 이웃 농부 헤이워스의 다리를 낫으로 베어버린 일이 발생했다. 당연히 헤이워스는 몹시 화를 냈지만 곧 용서했다. 다리를 잘랐는데 아무 조건도 없이 그냥 용서를 하다니! 이해할 수 없지만 스웜프머크 마을 사람들은 그런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배경에는 마을 사람들의 특이한 신체적 조건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스웜프머크 사람들은 팔다리가 잘려도 며칠이 지나면 도마뱀 꼬리가 자라듯 다시 자라났기 때문이다.
욕심없이 소박한 삶을 이어가던 마을에 어느날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멋진 아랍 말을 타고 값비싼 실크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있었지만 안색이 창백했다. 병에 걸렸을 거라는 마을사람들의 추측과 달리 그들은 일주일 동안이나 굶주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씨 착한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습지 풀 수프와 기장 염소 엉덩이살로 차린 식탁을 차려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음식을 사양했다.
남자가 말했다. "성의는 감사하지만, 저희는 이걸 먹을 수 없습니다."
농부 샐리가 말했다. "변변찮은 건 알아요. 왕한테 차려질 만한 진수성찬에 익숙하시겠죠. 그렇지만 저희한테는 이게 전부예요."
남자가 말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곡물, 채소, 동물 고기. 이런 것들을 저희 몸이 소화를 못합니다. 억지로 먹으면 저희가 더 약해지기만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농부 풀먼이 물었다. "곡물, 채소, 동물을 못 먹으면, 뭘 먹을 수 있어요?"
남자가 대답했다. "사람요."
작은 집에 있는 모두가 손님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섰다.
농부 헤이워스가 말했다. "지금 댁들이...식인종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남자가 대답했다. "선택이 아니라 타고난 겁니다. 어쨌든, 맞습니다."
-<아름다운 식인종> 중
자신들을 교양있는 식인종이라 밝힌 그들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거나 납치해서 먹지 않으며 오직 '교수형에 처해진 범죄자의 시체와 사고로 잘린 팔다리'를 비싼 값에 구입해서 먹기로 왕과 협정을 맺었다고 했다. 그들은 법을 지키느라 언제나 식량이 부족했기에 만성적인 영양 부족 상태로 살아갔다. 스웜프머크 마을에 도착했을 때도 그들은 거의 굶주릴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돈과 보석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 고기를 살 수 있는 곳은 없었으니까.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말에 놀라기는 했지만 마을사람들은 동정심이 넘쳤다. 폴먼의 낫에 다리가 잘렸던 헤이워스가 목발을 짚고 나오더니 '사고로 잃은 다리를 늪에 던졌는데 다시 찾아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늪으로 가서 자신의 다리를 찾아내어 접시에 담아서 식인종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감사 표시로 식인종들은 헤이워스에게 돈을 건넸다. 헤이워스의 다리 값이었다.
며칠 동안 먹고 기운을 차린 식인종들은 마을을 떠나던 날, 목발 없이 걷고 있는 헤이워스를 보았다. 그 모습에 식인종들은 스웜프머크 사람들의 신체적 비밀-팔다리가 잘려도 다시 자라나는- 을 알게 되었다.
다시 자라나는 팔다리는 식인종들에게 고갈되지 않고 끝없이 생산되는 풍부한 식량을 의미했을 것이다. 머나먼 곳으로 가서 사형수의 시체나 사고로 잘린 팔다리를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돈이 많았고 머리가 좋았다. 그들이 헤이워스의 다리에 값을 치른 그 순간부터 마을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도 밝혔지만 원래 스웜프머크 사람들은 큰 욕심없이 살았다. 습지에서 자라는 갈대가 유일한 마을의 특산품이었고 그걸 팔아서 생긴 돈으로 염소 엉덩이살을 먹는게 그들에게는 가장 큰 사치였다. 그래서 다리값으로 받은 돈으로 헤이워스가 나무집을 짓자 마을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그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큰 욕심은 생겨나지 않았다. 만약 식인종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마을은 예전처럼 소박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식인종들은 돌아왔고 마을사람들에게 엄청난 제안을 했다. 자신들은 썩은 음식에 진력이 났고 신선한 음식을 먹고 싶다고. 돈과 보석을 줄 테니 당신들의 팔다리를 팔라는 것.
의견이 분분하던 마을사람들은 결국 식인종들과 계약을 맺고 만다. 식인종들에게 선의로 자신의 다리를 준 적이 있었던 헤이워스를 제외하고 마을사람들은 모두 계약을 맺었다. 오른손잡이는 왼팔을 왼손잡이는 오른팔을 팔았고, 팔이 다시 자라면 또 팔고 계속 팔았다. 자신들의 팔을 잘라서 쉽게 돈을 벌게 된 마을사람들은 서로 경쟁하듯 집부터 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헤이워스처럼 나무로 만든 집을 짓더니 문 두 개에 박공지붕이 있는 집을 지었다. 팔이 자라면 팔아서 그 돈으로 집을 넓혔다. 집들은 점점 더 커졌고 넓었던 마을광장은 좁은 골목으로 변해갔다.
마을이 좁아지자 사람들은 더 넓은 땅을 사서 그 위에 더 크고 화려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집이 아니라 벽돌집을 짓더니 꿀 색의 석회암으로 만든 집도 지었다. 당연히 많은 돈이 필요했다. 팔 하나씩만 팔던 그들은 집을 지을 돈을 벌기 위해 다리까지 팔았다. 팔 하나에 반대쪽 다리까지 파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중에 최고는 베텔하임이었다. 그는 두 팔과 두 다리 모두를 팔아서 집 지을 돈을 마련했다. 다리를 잘라 걸을 수 없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릴 사람을 고용했지. 계단이 문제야? 내가 가고 싶은 데 어디라도 갈 수 있지. 다리는 필요 없어!"
-<아름다운 식인종> 중 -
소박했던 마을사람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모두 화려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는데 모든 돈을, 그러니까 팔다리를 잘라서 쏟아부었다. 자신의 집이 가장 최고이기를 원하며 잘린 팔다리가 어서 자라기를 기다렸다. 헤이워스만이 계약을 하지 않았고 예전처럼 습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다.
마을사람들과 식인종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냈다. 각자 가진 욕망의 크기가 정해져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몸집이 커졌다. 결국 커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들은 더한 것들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이 화려하고 커다란 집을 원했다면 식인종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맛을 원했다. 팔다리 조리에 질린 식인종들은 사람들의 귀가 어떤 맛일지 궁금해했다. 스웜프머크 마을사람들은 팔다리는 잘려도 다시 자랐지만 다른 부분은 다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귀를 팔지 않았다.
그쯤에서 멈춰야했지 않을까. 하지만 집을 짓느라 은행에서 큰돈을 대출받았던 바슐라르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팔다리를 잘라서는 마련할 수 없는 돈이었다. 그래서 그는 식인종의 요구에 엄청난 금액을 받고 귀를 팔았다. 마을사람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이 계속 필요했던 사람들은 귀를 팔았다. 그즈음 마을에 다리가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여전히 습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헤이워스를 빼고는 모두 하인들의 품에 안겨 이동했다.
귀를 판 다음에는 어떻게 됐을까. 한번 불이 붙은 욕망의 속도에 그대로 몸을 맡기는 식으로 흘러갔다. 그들은 코를 팔았고 그 다음에는 눈을 하나씩 팔았다. 그 돈으로 더 크고 화려한 집을 만들었다.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 식인종들의 욕망은 얼마나 더 커졌을까. 처음에 배불리 먹기만 바랐던 그들은 마을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느라 숲속 오두막에 사는 것에 짜증이 났다. 스스로를 교양있다고 했던가. 식인종들에게 더이상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이 화를 내며 쫓아내려 하자 그들은 '만약 집에서 못 살게 하면 팔다리를 안 사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러면 너희는 대출금을 못 갚고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라고 위협적으로 말했다.
마을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집을 잃게 되면 남는 것이라고는 성치 않은 몸 (코와 귀는 없고 눈은 하나뿐이고, 다시 자라겠지만 팔다리는 없는) 뿐이었다.
식인종들은 마을사람들이 지어놓은 아름다운 집에 들어와서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음 소개했던 것처럼 교양있게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지냈다. 집에서 쫓아내려 해도 나가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에게는 식인종들의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집 때문에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베텔하임은 자신의 집에 사는 식인종 헥토르를 쫓아내려고 며칠 동안 소리를 질렀다. 더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헥토르는 집에서 나가는 대신 베텔하임에게 제안을 했다. 혀를 팔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남김없이 주겠다는.
어떻게 되었을까. 베텔하임은 그 돈으로 집을 한 채 더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혀를 자르는데 동의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받고 행복하게 집을 짓고 살았더라면 식인의 섬뜩함이 느껴지지 않았겠지만 역시 이야기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헥토르는 베텔하임의 혀를 잘라 기름에 튀겨 소금을 뿌려 먹은 뒤 약속한 돈을 베텔하임을 안고 다니는 하인들에게 주고 집에서 내보내버린다. 그 뒤 이야기는 너무 끔찍하다.
팔다리가 없고, 혀가 없고, 몹시 화가 난 베텔하임은 꽥꽥거리며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헥토르는 베텔하임을 잡아서 밖으로 끌어간 뒤 뒤뜰 그늘진 곳에 있는 말뚝에 묶었다. 헥토르는 하루 두 번 베텔하임에게 물과 먹을 것을 주었다. 과일을 맺는 덩굴처럼 베텔하임은 헥토르가 먹을 팔다리를 키웠다. 헥토르를 조금 죄스러웠지만 심하게 죄스럽지는 않았다. 나중에 헥토르는 예쁜 식인종 여자와 결혼해서 함께 식인종 가족을 꾸렸고, 식구 모두의 식사 재료는 뒤뜰에 있는 남자에게서 나왔다.
-<아름다운 식인종> 중-
스스로를 교양있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던 식인종들의 본래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그들이 가진 돈과 보석에 혹한 마을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모습 속에는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잔혹함이 숨어있었다. 집이라는 건축형식에 얽매여 계속 빚을 졌던 마을사람들의 최후는 베텔하임의 경우와 비슷했을 것이다. 식인종들의 가축이 되어 죽기 전까지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맛보게 되는 운명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팔다리가 잘리는 것은 노동의 자율성을 잃는다는 것. 귀가 잘리는 것은 올바른 여론을 듣지 못한다는 것. 코가 잘리는 것은 외부와 단절된다는 것. 혀가 잘리는 것은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는 것.
공생관계로 시작했다고 착각했다가 식민지배로 끝을 맺었던 <아름다운 식인종>은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몸서리치도록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