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탕으로 쌓아 올린

백수린 <흑설탕 캔디> of [나의 할머니에게]

by 페이지

포장지에서 벗겨낸 각설탕 한 개와 숟가락 가득 퍼올린 가루설탕, 어느 쪽이 더 달콤할까?


외투 주머니에 각설탕을 넣고 다녔던 적이 있다. 카페 테이블에 놓인 작은 단지에서 꺼내 주머니에 넣었는지 커피와 함께 나온 각설탕을 커피에 넣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각설탕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었고 각설탕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다음날 외출할 때 그 외투를 입었다. 주머니에서 각설탕이 만져졌다. 손끝으로 각진 모서리를 따라갔다. 작지만 명확하게 느껴지는 선의 감촉이 좋았다. 내 손끝에서 각설탕의 각진 부분은 조금씩 부스러졌다. 그렇게 각을 잃어갔다. 포장지에서 설탕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자 나는 각설탕을 버리고 외투 주머니를 털어냈다.




난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있다. '나'의 기억 속에서 난실은 '160 센티미터의 키에 49킬로그램의 체중을 유지하고 가지런한 백발의 단발머리를 고수하던' 친할머니.

일제강점기의 한 개항도시에서 규모가 큰 양장점을 하던 부모의 장녀로 태어난 난실은 그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학에 입학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난실을 '고집'과 '허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평가했다. 세월이 흘러 난실의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여자'라는 말로 생전의 난실을 식어가는 육개장과 말라가는 편육 앞으로 소환했다. '나'는 그들의 말에 숨겨진 '뾰족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거슬렸는데, 사람들에게 소환되지 않은 난실의 나머지 인생을 어쩌면 자신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할머니 난실의 네 번째 기일을 맞아 성묘를 하러 간 곳에서 동생 상우에게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상우는 자신들이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프랑스에 살았던 시절, 아파트 일층에 살던 보청기를 끼고 키가 큰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었다. 내가 브뤼니에라는 이름을 기억해내자, 상우는 "할머니가 그 할아버지랑 사귄 거 맞지?"라고 재확인차 묻는다는 듯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놀라는 내게 상우는 프랑스에서 본 적이 있다면서 웃었다.

"사실 나, 우리가 프랑스에 살았을 때, 할머니랑 그 할아버지가 손잡고 벤치에 앉아 있는 거 집 근처 공원에서 본 적이 있거든."


오랜 투병 끝에 남편이 돌아간 뒤 난실은 혼자 지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나'와 동생을 위해 둘째 아들 집에 들어와 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집에 들어와 손주들을 돌보면서도 난실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집에 돌아가곤 했는데, 이럴 때 '나'는 할머니가 떠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곤 했다.


난실은 동년배의 할머니들과 여러 면에서 달랐다. 일본어에 능숙했고 계란말이와 계란찜을 일본식으로 만들 줄 알았고, '에델바이스'를 영어로 부를 줄 알았고,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음악학부에 진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손주들에게 피아노를 직접 가르쳐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난실은 어릴 적 잠에 잘 들지 못하는 '나'를 위해 수많은 이야기를 섞어 재창조해주곤 했다.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난실은 자신에게 닥친 인생의 모든 이야기도 순응하지 않고 새롭게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고집을 부려 대학에 입학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대학 중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부모의 뜻대로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난실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둘째 아들이 프랑스 파리의 주재원으로 가게 파견을 가게 되었을 때 난실은 한국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생활은 한국에 있었다. 이곳에 익숙한 모든 것들을 두고 파리로 떠나기에는 남은 인생의 페이지가 너무 얇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난실. 그럼에도 그녀는 프랑스로 떠나는 국적기를 탄다. 엄마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프랑스에 도착해 에펠 탑, 몽마르트르 언덕, 쇼팽의 무덤, 미라보 다리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여행자의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파리에서 생활자로 살아야 하는 순간부터 난실은 집 밖으로 나서기가 두려웠다. 거의 모든 시간을 그녀는 집에서 청소와 빨래를 하며 보냈고, 가끔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동아시아 식재료를 파는 일본식품점에 다녀왔다. 모국어로 대화할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 일본어를 통해서라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긍심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끼며' 난실은 그곳에 갔다.


1년쯤 지나 '나'와 동생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게 되었지만 난실의 프랑스어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 기본적인 인사말밖에 하지 못하는 난실은 집 밖을 벗어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 처음엔 곧 녹을 수 있을 듯 얇은 막으로. 하지만 이내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 두텁고 단단한 층을 이루었겠지."

-백수린 <흑설탕 캔디> 중-


프랑스에 온 지 2년쯤 되었을 때 난실은 아파트 일층에 사는 브뤼니에를 알게 된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답답해져 동네를 산책하기 위해 나서던 난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소리를 따라갔다. 활짝 열어놓은 창 너머로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연주하는 백발의 남자가 보였다. 피아노 선율은 난실에게 그 곡을 처음 쳤던 고등학교 음악실을 떠올리게 했고 피아노를 치던 손가락의 감촉을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마비된 것처럼 창밖에 서있던 난실에게 브뤼니에가 인사를 건넸다. 그가 건넨 첫인사는 난실이 유일하게 알아듣는 몇 안 되는 프랑스어 중 하나였다.

"Bonjour."


그날부터 난실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에 휩쓸린다. 피아노 연습을 하던 음악실의 마룻바닥과 끓고 잃는 주전자 뚜껑의 소리 같은 것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한번 인사를 한 뒤로 난실은 브뤼니에와 자주 마주쳤다. 프랑스어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브뤼니에를 자주 피해다녔다. 그러다 열흘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친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으며 코바늘뜨기를 하고 있던 난실은 브뤼니에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브뤼니에는 난실에게 인사하고 옆에 앉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건넸다.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도 그는 천천히 반복하며 하나의 단어를 들려주었다. "베토벤." 난실이 틀어놓은 워크맨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난실은 브뤼니에의 집에 놓인 피아노를 치게 된다.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16-2번이었다. 이 곡은 호프만의 소설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에 등장하는 크라이슬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난실이 이 곡을 연주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원제가 <우연히 끼어든 파지에 담긴 악장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단편적 전기가 포함된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소설 속에 나오는 다음 문장이 대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삶에는 그래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 멋진 것, 숭고한 것이 있다!"


난실이 피아노를 연주한 뒤부터 브뤼니에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피아노만 연주하다가 브뤼니에의 응접실에 앉아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점차 그녀는 차에 우유 한 방울과 각설탕 두 알을 넣는 브뤼니에가 자연스럽게 보인다. 난실은 프랑스어를 할 줄 몰랐고 브뤼니에는 프랑스어만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언어는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사전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해나갔다.


관사나 동사, 부사 같은 것은 생략한 채 동사와 명사, 이따금 형용사 한두 개로 이어지는 대화들. 사전을 사이에 둔 대화이기 대문에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이 주고받는 동사는 시제 없이 원형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데, 어느 날 문득 할머니는 동사를 사전에서 찾아가 삭제된 시제들은 대부분 과거형이며 할머니에게 미래형 동사를 써서 표현할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백수린, <흑설탕 캔디> 중


가끔 산책을 나가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응접실에서 CD플레이어로 모차르트나 바흐, 브람스를 들으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난실은 그 시간 동안 '음악이 인도하는 대로 몸을 맡긴 채 먼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곤 했다. 어느 겨울의 오후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난실은 음악을 들으며 멀리 지나온 시간을 여행 중이었고 브뤼니에는 각설탕으로 탑을 쌓고 있던 느릿한 오후.


"난실!"

CD 재생이 끝난 줄도 모른 채 그런 상념에 빠져 있다 깜빡 졸고 있는데 갑자기 브뤼니에 씨가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가 눈을 떴을 때 발견한 것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엄청난 높이의 각설탕 탑이었다. 켜켜이 쌓인 높다란 각설탕 탑.

"와!" 할머니가 탄성을 질렀다. 마치 경이로운 일을 난생처음 목격한 사람처럼.

할머니의 반응에 신난 브뤼니에 씨가 부엌에서 언제 가져온 것인지 모를 설탕 상자 안의 남은 각설탕들을 테이블 위에 아주 조심스럽게 마저 부었다. 테이블 위로 쏟아지는 정육면체의 갈색 설탕들. 할머니는 각설탕들을 바라보다가 가까운 쪽에 놓인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아이, 달아.'

이런 천진한 달콤함이라니. 각설탕을 입 안에서 굴리자, 단맛이 서서히 퍼지고,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무슨 일인가로 혼난 후 양장점 입구 앞 흙길에 앉아 울고 있던 어느 초봄, 할머니가 보았던 여자 손님의 우아한 보라색 클로슈 모자. 인력거에서 내린 그녀가 할머니 손에 쥐여줬던 흑설탕 캔디. 난생처음 맛보았던 그 황홀하도록 달콤한 맛. 그 기억에 대해서도 브뤼니에 씨에게는 영원히 말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낯선 섬에 표착한 것 같았던 할머니의 일생이나, 하루가 너무 길 때마다 빨리 죽여달라고 신에게 간구하지만, 죽음 이후를 막상 상상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공포에 대해서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듯.

-백수린, <흑설탕 캔디> 중-


각설탕으로 쌓아 올린 탑을 보며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그 다디단 각설탕이 입에서 단맛으로 퍼지면서 어린시절의 난설이 처음 경험했던 흑설탕 캔디의 달콤한 맛을 불러오지만,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그 순간의 맛이 다시는 지나간 시간과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다시는 인생에서 기대할 만큼 달콤한 맛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체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있는 순간. 각설탕으로 탑을 쌓아 올리는 두 사람의 오후,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지만 찰나의 행복은 존재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흑설탕 캔디>는 동생에게서 프랑스에 거주할 때 할머니가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브뤼니에씨와 사귀었다는 말을 듣고서 손녀인 내가 할머니의 오래된 일기장을 통해 상상하는 내용이다. 할머니의 짤막한 문장을 통해 '나'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할머니 난실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과 브뤼니에씨와의 교류를 재구성해서 상상한다. 할머니 난실에게 물려받은 것인지 '나'에게도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능력이 있었나보다.


할머니의 일기장을 보았던 그날 밤, '나'의 꿈속에 할머니가 나온다. 아직 소녀인 나는 할머니를 보고 반가워 달려가 안기는데, 할머니 품에서 달콤한 냄새가 난다. 어디에서 나는지 알지 못한 나'는 할머니가 주먹을 꼭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떼를 쓴다. 하지만 할머니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것은 내 것이란다."




<흑설탕 캔디>는 [나의 할머니] 에 수록된 단편소설이다.

여섯 편의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건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 흥미로웠던 소설은 손보미의 <위대한 유산>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 가장 비슷하게 그려낸 할머니가 등장하는 소설은 윤성희의 <어제 꾼 꿈>과 최은미의 <11월행>이었고, 예측과 어긋났던 소설은 할머니보다 어른이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화자를 내세운 강화길의 <선베드>였고,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은 다른 인물들의 등장 속에서도 <아몬드>의 냄새가 났다.

[나의 할머니]는 말 그대로 할머니가 등장하는 소설들이 담겨있다. 여섯 명의 작가들이 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각각 다르다. 그렇다고 보편적 할머니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보편적이라는 말 자체가 어패가 있으니까. 모든 사람은 개별적이다. 그러므로 개별적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한다. 그런 존재로 살아갈 때만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를 주는 자신만의 서사를 구성할 수 있을 테니까. 나이를 먹어 주름진 육체에 정신이 갇힌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더라도, 각자의 삶은 난실이 했던 말처럼 "이것은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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