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마션 - 앤디 위어

희망적이라기보다는, 절망을 삭제한 소설

by 로이장

요즘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고 있다. 답을 찾으려고 유튜브를 한참 뒤져도 마음이 정리되기보다 더 복잡해진다.

생각하는 데 에너지를 너무 써버려서, 취미인 독서를 즐기기 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희망적이고 명랑한 소설'을 의도적으로 고르고 싶었다. 그때 집어 든 책이 앤디 위어의 마션이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스포를 통해 주인공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적어도 이 결말이라면, 책을 덮은 뒤 더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독한 시작

마션의 시작 문장은 내가 읽은 소설들 중에서 가장 독하다.


아무래도 X 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X 됐다.

그 문장 그대로 주인공은 정말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려 있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것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소설은 비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목숨이 하나 더 있는 사람들처럼 침착하게 행동한다. 그 태도는 비극이 자리 잡을 틈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코미디처럼, 시련은 반복되지만 언제나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만 주어진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는 독자가 감정적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배치한 장치로서 동작한다.




절망을 삭제한 소설

이 소설에서의 '긍정'은 말 그대로 장치이다.

우리 독자들은 와트니의 속마음을 모른다. 우리는 그가 정성껏, 때로는 장난스럽게 남긴 기록을 통해서만 그를 간접적으로 본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속마음 역시 알 수 없다. 그들의 행동과 대화만이 나타나 있을 뿐.

그들 모두 절망적인 상황을 겪고 있지만 그 절망이 모두 그려지진 않는다. 만약 와트니와 다른 인물들 모두의 속마음이 전부 드러났다면, 이 소설은 지금처럼 희망적으로 읽히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처절하고 더 나아가 서로 의심하는 스릴러물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션은 희망적인 소설이 아니다. 절망을 삭제한 소설이다.




친절한 기만

이 '긍정' 장치는 독자를 기만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절망을 걷어내고, 희망적인 장면만을 선택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좋은 모습과 팀워크, 서로에 대한 신뢰만이 강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에게 이 장치는 친절하게 다가왔다.

암울한 이야기를 끝까지 버텨낼 자신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나에게 무언가를 극복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이미 누군가는 극단적으로 암울한 상황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을 보여주었고, 그 정도면 충분히 위안이 되었다.

이 소설은 '이 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느껴라!'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꽤 많은 것을 얻었다.

이 글을 쓸 에너지가 생겼고 다음 책을 집어 들 힘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