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앤디 위어 - 마션’과 비슷하다. 쉽게 읽을 책이 필요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약 10년 전에 읽은 기억이 있었고, 내 기억 속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쉽게 읽히며 주인공의 무난한 성장을 그린 따뜻한 소설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다시 고른 책이었다.
하지만 다시 읽은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억보다 조금 더 어두웠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이 소설을 꽤 많이 미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당시가 꽤나 행복했던 시기였을 수도 있고.
이번에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건, 주인공의 상황이 내 기억 속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는 점이었다.
친엄마에게 버림받았을 때도, 새엄마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질 때도, 동생이 자신을 가리켰을 때도 주인공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무력했다. 그저 큰 힘에 짓눌렸고, 그 무력은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다.
주인공 스스로 극복하기엔 너무나도 큰 상처였기에, 그는 말을 더듬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20대와 30대의 나에게 이 무력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다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 무력함을 더 가혹하게 읽게 됐을지도.
하지만 주인공은 나약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언젠가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인지하고 있다.
주인공은 언제든 편안한 침대에 몸을 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바닥에 눕는다.
한 번 안락함에 몸을 맡기는 순간, 돌아가기가 훨씬 어려워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편안함이 아니라, 결국 돌아가 맞서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공간은 이런 주인공에게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머무를 수 있는 시간과 거리를 내어줄 뿐이다.
그 시간 동안 그는 많은 것을 지켜본다.
기적에 기대어 문제를 넘기려는 존재를,
기적을 만들어내는 존재를.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멀리서 바라본다.
그곳에서 그는 알게 된다.
기적은 상황을 바꿀 수 있어도 책임까지 대신 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신적인 존재조차 결함과 아픔을 지닌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자신을 지지해 주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 책을 덮고 남은 감정은 희망도, 각오도 아니었다.
다만 숨을 조금 편히 쉴 수 있게 되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소설 속 주인공은 극적인 구원을 받지 않는다. 대신, 끝내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다.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 삶 앞에 멈춰 서본 적이 있었던가를.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멈추는 게 두렵기도 하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누군가가 내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구원해 주지는 않지만,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관찰할 수 있는 거리를 남겨두며,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아픔을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