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았다

by JS

세품아 안에서는 크고 작은 일이 늘 벌어집니다. 10대 남자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운동하다 다치는 건 부지기수고 실수로 벌어지는 사고도 종종 발생합니다. 그리고 싸움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세품아 안에서 물리적인 싸움은 금지되어 있습니다만,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익힌 힘의 논리에 익숙하기에 가끔 벌어집니다. 아이들에게 힘이란 나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신체적인 힘과 무리의 권력입니다. 그리고 힘 있는 아이는 약한 아이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품아 안에서는 그 힘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싸움은 금지되어 있고, 외부 무리의 권력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형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동생이 잘못했으면 때려서 교육해야 하는데, 선생님들은 교육 방법을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아는 작은 세계의 논리로, 더 큰 세상의 문화를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가끔 싸움이 벌어지면, 비슷한 힘을 가진 아이들끼리의 다툼보다는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밖이라면 내 눈도 못 마주쳤을 놈이 감히 내 심기를 건드려?’ 하는 심리입니다.


어느 날 A가 B를 때렸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A가 형이고 B가 동생이며, 둘은 밖에서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었습니다.


B의 이야기:

“제가 밖에서부터 A 형이랑 친했어요. 여기서는 제가 선배니까, 형이 적응 잘하도록 이것저것 알려 줬고요. 그런데 자꾸 밖에서처럼 가오를 잡는 거예요.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좋게 말해줬는데, 기분이 나빴나 봐요. 더 얘기했다가는 싸울 것 같아서 제가 먼저 자리를 피했는데, 갑자기 쫓아와서 저를 때렸어요. 너무 화가 나요. 제가 얼마나 형을 챙겨줬는데…”


A의 이야기:

“제가 밖에 있을 때 B를 많이 챙겨 줬어요. 다른 놈들이 B를 마음에 안 들어 해도 제가 다 막아줬단 말이에요. 세품아에 왔는데 B가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런데 B가 계속 선을 넘는 거예요. 친한 동생이니까 까불어도 다 참았어요. 그런데 오늘은 애들 앞에서 일부러 띠껍게 말하는 거예요. 진짜 화가 났지만 그것도 참았어요. 최대한 좋은 목소리로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저를 무시하고 그냥 가는 거예요. 그동안 참았던 게 폭발해서 쫓아가 한 대 때렸어요.”


같은 사건에 대한 상반된 이야기. 두 아이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억울한 표정과 과장된 손짓으로 저마다의 서사를 펼쳐놓았습니다. 저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심각한 표정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저는 A의 대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참았다’는 표현에 주목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부모나 교사, 혹은 직장 상사라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나 학생, 아랫직급 직원에게 ‘내가 참고 있다’는 표현을 쓰신 적이 있습니까? A가 말하는 ‘참았다’는 인내나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벼르다’입니다. 즉, “그동안 제가 참았어요”라는 말은, “때릴 기회를 보고 있어요”라는 의미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또한 아이들을 보며 무언가를 벼를 때가 많습니다. 주변에서는 저에게 인내심이 많다고 하지만, 사실은 벼르는 것입니다. ‘제대로 걸리기만 해 봐라, 아작을 내준다’는 마음입니다.


아이들의 서툰 용어를 보며 웃음이 날 때도 있지만, 그들의 말은 결국 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아이들과 저의 마음 쓰는 방식이, 사실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매번 깨닫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을 저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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