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by JS

“요즘 애들은 정말 문제야.”


아마 이 말은 인류가 문화를 이룬 이래로 계속 유지되어 온 개념일 것입니다. 모든 성장기를 거친 어른의 입장에서, 미성숙한 존재를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저 역시 그 말을 들으며 자랐고, 이제는 그 말을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의 말썽과 사고를 마주할 때면 머릿속에서 요동치는 생각들을 막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때였다면 너는…!’, ‘요즘 태어난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하는 날것의 감정들 말입니다.


그런데 사고 치는 아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주위에서 보고 들었던 소문 속 아이들과, 지금 세품아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기신 제 아버지께서도 가끔 당신의 청소년기 얘기를 해 주십니다. 저의 때나 아버지의 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기본적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습니다. 바로 ‘환경의 변화’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유무입니다. 제 어린 시절, 동네에서 그렇게 사고를 치던 형들도 지금은 대부분 평범한 어른이 되어 성실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 지금과 같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그 형들의 철없던 행동은 디지털 주홍글씨로 남아 평생을 따라다녔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소문이란 부풀려지기 마련입니다. 영화 <품행제로>의 주인공처럼 평범한 문제아가 소문 속에서는 전설적인 강자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무서워서 눈도 못 마주치던 동네 형을 서른 넘어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했는데, 그가 대뜸 물었습니다. “내가 대체 뭘 했길래, 다들 나를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그는 누굴 때리거나 위협한 적이 없었는데, 저 또한 부풀려진 소문만으로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한번 온라인에 기록되면 잘못을 뉘우치고 새 출발을 할 기회조차 얻기 어렵습니다. 말이나 글이 아닌, 영상으로 그 순간이 영원히 박제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10대의 치기 어린 행동이 평생의 멍에를 져야 할 만큼 무거운 책임인지, 저는 가끔 의문이 듭니다. 물론 잘못된 행동에는 책임져야 합니다. 저는 제대로 된 책임을 경험하는 것이 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SNS는 아이들이 서로를 만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온라인에서는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을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이 아이들은 글 몇 개만으로도 서로를 알아봅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전국 단위의 유명인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개념 역시 크게 달라졌습니다. 80~90년대에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사회 부적응자 이미지였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자퇴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나 때는 선생님한테 맞아도 아무 말 못 했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신고 안 해요? 왜 맞고 가만히 있어요?” 시대가 달랐다고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지금 시대를 사는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원하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새로운 세상의 규칙과 문법 안에서,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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