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15년을 살고, 이후 미국에서 15년을 살아온 서른 살의 미국 국적 한인입니다. 이 사람은 한국인일까요, 미국인일까요? 반대로 미국에서 태어나 15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건너와 15년을 산 서른 살의 한국 국적 한인은 어떻습니까? 이 사람은 자신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여길까요? 혈통이나 법적 국적을 논하는 게 아니라 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가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니 답은 제각각이어도 의견은 비슷했습니다. 바로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시간을 ‘어디서’ 보냈는지가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디서’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누구와 어울리며 어떤 문화와 환경 속에서 살았는가’를 의미합니다. 즉, 사춘기 시절의 경험이 한 인간의 영혼에 국적을 부여합니다.
그렇다면, 이 결정적인 시기를 폭력의 한복판에서 보낸 아이의 정체성은 어떻게 될까요? 성인이 되어 주먹질은 멈출 수 있어도, 세상 모든 문제를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그 ‘생각의 버릇’까지 멈출 수 있을까요?
A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조용했던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A는 중학생이 되자 많은 폭력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부모와 교사로부터 폭력을 당한 적이 없음에도, 동네 형들에게 배운 대로 후배들을 때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 동네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이었으니까요. 그랬던 아이가 세품아에 와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B한테 만든 걸 자랑하려고 보여줬거든요. 그런데 B가 장난친답시고 그걸 쳐서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웃는 거예요. 순간 한 5초 정도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한대 꽂아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B가 줍고서는 장난이라며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화가 안 풀렸지만 그래도 잘 참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칭찬과 함께 뼈 있는 말을 던졌습니다.
“야, 잘 참았네. 훌륭해. 그런데 말이야, 보통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팰까? 꽂을까?’를 고민하지 않아. 그냥 ‘야! 지금 뭐 하냐?’ 하고 소리부터 지르지.”
A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 진짜. 저는 이 생각머리부터 고쳐야 할 것 같아요. 왜 저는 때릴 것부터 생각할까요?”
또 다른 아이 C는 입대를 위해 신체검사를 받다가 정밀 심리 상담 대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보면 때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질문에 당당히 ‘예’라고 답했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로 제게 따졌습니다.
“아니, 누구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고 싶잖아요. 진짜 때리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안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거기 앉아있던 수십 명 놈들이 다 거짓말한 거지, 제가 이상한 게 아니잖아요. 왜 저만 불러서 미친놈 취급하는지 너무 억울해요.”
저는 그 하소연을 듣고 한참을 박장대소했습니다. C는 계속 웃는 저를 보며 더욱 억울해했습니다. 웃음을 겨우 멈추고 녀석에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자슥아, 네 말이 맞지. 마음에 안드는 놈 보면 패고싶지.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게 그냥 ‘생각’에서 끝나. 하지만 너는 그걸 실제로 ‘실행’에 옮겨본 놈이라는 게 차이야. 다른 사람들은 어차피 때릴 생각이 없으니까 굳이 ‘예’라고 답을 안 할 뿐이고, 너는 그 생각이 진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예’라고 한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냐?”
아이가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 많은 부모님이 아이의 ‘환경’을 바꿔주겠다며 이사를 결심합니다. 그 결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리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까요? 냉정하게 말해, 거의 없습니다. 폭력 혹은 다른 나쁜 행동이 이미 모국어가 된 아이는, 어딜 가든 기가 막히게 그 언어가 통하는 동네와 친구를 찾아내기 마련입니다.
아이의 ‘국적’, 즉 정체성을 바꿔주지 않는 한 물리적인 이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부모님과 교사들의 고민에 대한 시원한 답변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쉬운 길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정체성을 갖게 된 계기와 시간만큼, 그것을 되돌리는 데도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고민이 시작되었다면 변화도 시작된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방향은 바뀝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