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만나며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불안’이었습니다. 제가 불안이 적은 성격인 탓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설 만큼 깊어서 그 실체를 알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또한 그 불안은 흔히 알려진 증상과 다른 방식으로, 또 아이마다 각기 다르게 표현되기에 이것이 불안 때문인지 성격 문제인지 구분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A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영리하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문제적 행동과 말을 일삼았습니다. ADHD 진단을 받고 초등학생 때부터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했지만, 사소한 일에 폭발하는 등 통제되지 않는 행동으로 주변을 힘들게 했습니다. 당연히 가족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세품아에 와서도 A는 독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래들은 이해 못 할 논리를 주장하고, 이상한 지점에 꽂혀 혼자 흥분하며 씩씩거렸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자신이 이해가 안 된다는 이유로 교사를 독점하려 했습니다. 교사가 아무리 친절히 설명해도, A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A는 공부를 해 본 적도, 할 생각도 없었기에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A는 계속 고집을 부렸고, 만일 교사가 자신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주지 않으면 그 교사는 그날로 ‘나쁜X’이 됩니다. 이 모든 행동의 목표는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A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 ‘관심’이었습니다. 아이는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해결되지 않는 갈증을 분노의 형태로 끊임없이 표출했습니다.
B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B 역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아이였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면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 미칠 것 같다고 했습니다. B의 불안은 수시로 건강에 대한 염려로 나타났습니다. 어느 날은 눈에 이상이 생겨 실명할 것 같다며 병원에 가자고 몇 날 며칠을 보챘습니다. 온갖 검사를 받고 ‘아무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아왔지만, 자신이 유튜브에서 본 검사를 하지 않았다며 의사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교사와 다른 아이들도 B의 걱정에 둔감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신뢰가 쌓이자, B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죽음의 공포 속에 살고 있어요. 너무 무서워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작은 불안을 일부러 크게 키워요. 눈에 문제가 생기면 실명할 수는 있어도 죽지는 않잖아요. 눈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저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거예요. 그러면 죽을 것 같은 진짜 불안이 조금 사라져요.”
이런 깊은 불안 속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유아기부터 아동기까지, 보호자가 밤 시간에 곁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내리는 밤은 아이들에게 공포의 시간입니다. 이때 기댈 수 있는 보호자, 특히 어머니가 부재했다는 경험은 아이의 정신과 마음에 매우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C라는 아이는 초등 저학년 때 조부모 댁에 맡겨졌습니다. “1년만 기다려 달라”는 엄마의 말을 믿고, 아이는 매일 밤의 공포를 할머니 품에서 견뎠습니다. 하지만 약속했던 1년은 아무 설명 없이 5년으로 늘어났습니다. 엄마에게 그 5년은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돈을 번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 5년은 매일 밤 거절당하고 버림받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엄마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찾아와도 아이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곧 또 떠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위 세 명의 아이들은 모두 생각하는 힘이 강하고 또래보다 영리해 보입니다. 아마도 매일 밤 불안과 공포 속에서 ‘나는 왜 버려졌을까’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잠들었던 시간이, 역설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운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힘의 방향이 지독히 부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그럴듯한 궤변을 늘어놓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끝없이 떼를 씁니다. 그 모든 행동은 결국 단 한마디의 절규와 같습니다.
“저를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엉망진창인 저를 안아주세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성장기에 부모라는 든든한 보호막 안에서 자랍니다. 이 보호막이 없는 아이들은, 무기와 갑옷도 없이 싸움터에 내보내진 검투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 누가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걱정, 누가 자신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볼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 끊임없는 공포가 아이들을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아이들은 먼저 남을 공격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유도 모르는 불안 속에 사는 아이에게, 세품아는 바로 그 ‘보호막’이 되어주고자 노력합니다. 함께 웃고 울며 온전히 아이의 편이 되어주고, 아이의 서툰 공격을 여유 있게 받아주며 “더 이상 그럴 필요 없다”고 온몸으로 알려줍니다.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공격은 매번 다르거든요. 그래도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멋진 방어능력을 보여 주려 매일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