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전곡에서 신탄까지
백의리에서 하루 자고 아침에 일어나 버스로 전곡역까지 이동했습니다. 전곡에서 경원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계획했습니다. 전곡에 도착해서 먼저 시장을 구경했습니다. 때마침 5일장이 열려 활기찬 분위기였습니다. 포천 5일장이 등갈비로 유명하다면, 전곡 5일장은 닭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곡전통시장도 다양한 품목의 상점이 있으며 관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꽤 규모 있는 도시인 전곡은 병원과 여러 산업이 잘 구비되어 있습니다. 약국에 들어가 종이 반창고와 건조한 날씨 덕에 터진 입술에 바를 연고를 샀습니다.
이후 전곡에서 대광리까지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날씨가 매우 좋았고, 걷는 길에 예쁜 카페와 교회, 강아지들을 만나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추수가 끝난 논밭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단점으로는 도보로 걷기에 좋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인도가 조성되었지만 큰 도로 주변을 걸어야 했습니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먼지와 소음이 심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작은 길 위주로 걷는 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전날부터 발생한 종아리 통증 때문에 빨리 이동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경원선 중 운행하는 마지막 역인 연천역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북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 신망리역에 도착했습니다. 마을도 신망리역도 작습니다. 그곳에서 작은 카페를 들어갔습니다. 사실 소변이 급했는데, 신망리역사가 닫혀있어서 화장실 사용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90년대 배경 영화 속에서나 볼 듯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 즐겼던 가수와 영화 테이프가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의자에 앉아서 테이프에 적혀있는 가수들의 이름을 차근차근 봤습니다. 예전 기억이 몽글몽글 떠오릅니다. 제가 한때 열광했던 그 가수들입니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도 있고, 이제는 세상을 떠난 분도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는데 주문한 커피와 꽈배기가 나왔습니다. 와!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정말 맛있는 꽈배기를 먹습니다. 주문할 때 사장님께서 나직하게 꽈배기 직접 반죽한 거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깝지만 않았더라면 2~3개 먹었을 겁니다.
감탄하며 커피와 꽈배기를 먹고 있는데, 동네 분이 오셔서 사장님께 문의합니다. 영화 찍으려는 곳에서 이 카페를 대여하고 싶어 한답니다. 역시 90년대 배경 영화라고 합니다. 발전이나 개발이 안 됐다는 표현의 다른 의미는 역사와 추억이 아직 존재한다가 아닐까요. 제가 느낀 작은 마을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이 가치가 사라질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카페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광리역을 지났습니다. 대광리 역 주변도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식당과 편의시설들이 잘 구비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걸어서 해지기 전에 이날의 목적지인 신탄리역에 도착했습니다. 지나온 마을도 예뻤지만, 신탄리역 인근이 저는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숙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신탄리역 인근에서 숙박하는 것이었으나, 지도에 영업 중으로 표시되었던 숙소들이 막상 가보니 모두 폐업한 상태였습니다. 시골에서는 숙소나 식당을 이용할 때, 인터넷 정보와 달리 폐업한 곳이 많아 반드시 사전에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신탄리역 인근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하고, 이미 날이 어두워져 버스를 타고 다시 대광리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버스가 끊기지 않았습니다. 대광리역 인근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아, 숙소들이 공사 중이거나 만실이었습니다. 겨우 방이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발 상태를 봤습니다. 뒤꿈치에 큰 물집이 하나씩 자리 잡았습니다. 물집 자체는 아프지 않지만, 종아리 근육통이 심한 상태입니다. 스트레칭을 하고 준비한 마사지볼로 다리를 풀어줍니다. 갑작스러운 장거리 행군으로 몸이 놀랐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즐거움이 커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