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 자신에 대해 잘 알려주는 책이라며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라는 책을 보여주었다. M이 보기와 달리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교대근무 및 근무의 난이도로 인한 문제가 커서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때 그때 예민한 상황을 극복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M은 innate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궁금해서 M이 보여준 책의 해결책 부분을 먼저 보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책에서는 solution 중 하나로 행복 노트 적기를 추천했다. 나의 지난 한 주 동안 행복했던 일들.. M은 자신이 행복했던 소소한 경험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런 몽글몽글한 행복 경험 대신 하루 하루 해야 할 일들을 무사히 완수한 것들만 떠올랐다. 나의 하루는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적어 놓고, 하나씩 지워가며 완수하는 것이었고 그 경험을 통해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껴왔다. 이러한 목적 지향적인 틀 안에서 그 외의 작은 행복들이 등한시되었다. 또한 예정했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그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그에 대한 부채감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최근 J가 수영수업을 듣는 것과 DMV 스케줄 예약을 M에게 부탁했고 M이 까먹고 하지 못했는데, 이 일에 대해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도 이러한 생각의 틀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미션/목표의식과 행복을 혼동하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행복의 본질은 갓 구운 빵을 찢어 먹을 때 느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만족감 같은 것"이라고 했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무엇일까? 목표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해서 내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 길에 걸으며 느끼는 시원한 공기와 다리를 움직일 때 느껴지는 경쾌함이 행복하고, 자고 있는 J를 바라보거나 J를 꼭 껴안고 있을 때 행복하고, M과 손을 잡고 산책할 때 행복하고, 식사시간은 언제나 행복하다. 운동할 때 행복하고, 이른 아침 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행복하고, 명상을 할 때 행복하고, 엄마와 통화할 때 행복하다. 다만 주말 내내 J가 하기 싫어하는 숙제를 억지로 시키느라 하루가 다 가버리고 나는 소진되었던 어젯밤에는 내가 계획했던 그날의 소임을 다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행복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를 통제하고 할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은 쉬운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하도록 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그것은 내 임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하루는 해야 할 임무보다 나의 행복감에 집중하려고 생각했는데, 하루 안에 해야 할 일들이 많고 그날 또 많이 생겨나서 그게 쉽지 않다. 할 일을 최대한 잘 끝내고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아 맞다, 내 행복"이라고 깨닫게 된다. 오늘의 일을 잘 끝낸 것만으로도 이미 많이 행복한데... 해야 할 일들을 피할 수 없는 한은 해야 할 일을 완수하면서 누리는 성취감도 행복이긴 하다. 다만 완수하지 못했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도 남은 3~4시간 동안 주어진 일을 잘 끝내자. 서두르지 말고, 적당하게 일하도록 노력하자.
202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