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을 보면서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한국이 궁금해져서 오늘 아침 facebook에 들어가 보았다. Facebook이 한창 유행할 때가 2000년대 중후반이었어서인지, 나의 facebook 친구들은 대부분이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친구들의 약 90%는 나처럼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지만, 10% 정도는 여전히 활발하게, 또는 간간이 글을 올리고 있다. 의대 사람들이 많다 보니 삶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졸업 후 거의 20년이 지나고 나니 이 10%의 모집단 내에서도 꽤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 개업을 하고, 육아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맛있게 먹은 특별한 음식들이나 화려한 모임 사진들을 올리는 사람들, 정치나 의료환경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사람들, 훌륭한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사람들.. 특히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님께서 이번 달 초에 Nature에 교신저자로 논문을 발표하신 소식을 듣고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훌륭한 연구성과를 많이 내시는 교수님들을 옆에서 보면 기본 에너지 레벨이 교수들 중에서도 월등하게 높고,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이 갖추어져 있고, 적극적이고, 사회활동과 교류를 즐기고, 무엇보다 연구 자체에 매료되어 즐겁게 일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 능력은 타고난다고 생각하고, 노력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학생 때에는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전공의 생활을 힘들게 넘기면서 이제는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도 않고, 자리를 위해 경쟁하고 싶지도 않고, 돈을 벌면서 삶을 여유롭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전임의 때에는 그래도 내가 연구를 할만한 능력이 되는지 스스로를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구를 했고, 내가 다룰 수 없는 여러 가지 환경이 갖추어진 덕분에 교수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연구성과를 내는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환경 안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내가 기대한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감사 밖에는 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또는 살아야 할까?라고 자문해 본다면, 잘 모르겠다. 일은 뚜렷한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기 쉬운 종류의 것이기 때문에 보람도 크고, 명예도 주어지고, 중독성이 있다. 나의 경우에도 연구가 한창 진행될 때에는 자다가 아이디어가 생길 때도 있어서 잘 때도 침대 옆에 수첩을 두고 잠들고, 하루 종일 연구 생각을 했는데, 그 과정은 힘들기보다는 황홀하고 뿌듯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 J와는 주말만 온전하게 함께 보냈고, 주중에는 기껏해야 저녁 한두 시간을, 나의 best quality 시간은 모두 일에 쏟아부은 후 녹초가 된 몸으로 함께 보냈다. 일단 어떤 연구를 개시하고 나면 due date가 존재하는, 급하다고 외치는 새로운 업무들이 끊임없이 파생되어서, 점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붓게 된다. 가면 갈수록 가족과 나의 개인적인 삶을 온전히 지키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정년 퇴임을 하시는 교수님들을 보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가족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남은 삶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겠다고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교수님은 일에 너무 올인하다가 아이와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탄하시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일만이 문제는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미국에 와서 바쁘게 연구를 하게 될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다. 하지만 연구 프로젝트는 시작이 되었지만, IRB 등이 생각보다 지체되고 지도 교수님도 많이 바쁘셔서 아직까지도 주어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들을 주도적으로 찾아가며 그동안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예상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일과는 달리 가시적인 성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자기혐오까지 느끼게 되는, 나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6개월이 지나가고, 긴 여행을 함께 하면서 J에 대해서도 배우고, 나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놓아주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두통 때문에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육아 때문에 명상을 더 많이 찾게 되었다. 연수 초반에는 J와 정말 많이 서로 소리를 지르고 울고 괴로워했었는데, 요즘은 꽤 평온해졌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안아주게 되었다.
그러던 중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내시는 교수님 소식을 접하면서 약간의 혼란이 왔다. 그런 분은 명상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가족과는 짧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 같았다. '나는 왜 모든 것을 다 해내지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너도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생각도. 다시금 나를 채찍질하는 inner self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인지되었다. 최근 MSC (Mindful Self-Compassion)이라는 명상을 배울지 말지 고민하다가 막 공부를 시작했었는데, 내게 이 명상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성취는 중독적이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연구에만 몰입해야 한다고 하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모든 것을 할 필요는 없다. 나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나의 삶에는 중요한 가치들이 많다. 그래서 일에 중독될 수 있지만 중독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된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나의 몸과 마음을 챙기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즐기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정해진 연수 기간이 끝난 후에는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한 확신을 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