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붙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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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영화제의 스태프, 대학 출판사의 인턴을 거치는 동안 독서모임은 서서히 잊혀갔다.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했기에 책을 열심히 읽을 생각도, 책에 대해 깊이 토론할 여유도 전혀 없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시기를 나의 '독서(모임) 암흑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독서모임, 물론 좋지만 그것도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다 2022년 여름쯤 취업을 하게 되었다. 직장에, 새로운 일에 적응해 나가며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생긴 겨울 무렵 다시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교 안에서 했던 친구들과의 독서모임 경험밖에 없었기에 어디에서 누구와 독서모임을 할 것인지 다시 처음부터 찾아 나서야 했다. 인스타그램과 구글, 네이버 등에 독서모임을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유명한 독서모임 기업들부터 작은 소모임까지 생각보다 많은 결과가 나왔고 그중에서 선택만 하면 됐다. 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하는 혹은 수십 번 독서모임을 운영해 본 경력자가 운영하는 모임들이 궁금하긴 했으나 이것들 대부분은 유료였고 가격대가 만만치 않았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개인이 운영하는 소모임에 들어가자니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독서모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나 편견 중 하나인 연애 모임 아니냐는 의문이 내게도 있었던 듯하다. 작은 모임에 나가면 제대로 독서모임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중간 지점의 모임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모임이 있었다. 독서모임전문 기업 A에서 운영하는 모임으로 일회성 모임이었다. 우선 일이만 원대로 가격이 저렴했고 모임을 주도하는 모임지기가 따로 있어 믿음이 갔다. 함께 읽는 책에도 관심이 갔는데,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었다. 수전 손택을 다룬 책은 읽어보았지만 그녀가 쓴 책은 읽어보지 못했기에 관심이 있던 상태라 이 모임에 나가보자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모임을 기다리며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모임 당일이 되어 서초동의 모임 공간으로 가며 부디 모두 좋은 사람들이기를 바랐다. 친구나 지인인 아닌 사람과의 독서모임은 처음이기에 더더욱 떨렸다.
공간에서는 이미 몇몇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고 다들 즐거워 보였다. 분위기가 꽤 좋아 보여 안도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와 어떤 모임에 왔냐고 물으며 나를 안내해 주었다. 『타인의 고통』 모임은 모임지기와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이 참여하는 소소한 규모였다. 모임은 생각보다 즐거웠고 심도 깊은 대화들이 오가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질문 중 하나는 “타인의 고통을 문학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모임에서는 한강, 김애란 등 작가의 소설을 언급하며 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는 데 문학을 읽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학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자신의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모임지기는 등단한 작가였고 다른 한 명은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나 역시 소설가를 꿈꾼 적이 있고 그 당시 여전히 그런 마음이 있긴 했지만 그들에 비해 내 마음이 너무 작은 거 같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타인의 꿈, 그에 따른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내 마음에도 도움이 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각자의 감상과 평가 그리고 타인, 고통, 문학 등 여러 갈래로 퍼져나간 이야기들 덕분에 A에서의 첫 기억은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음엔 또 어떤 모임이 있나 어플을 뒤져 보았다. 같은 모임지기가 하는 겨울 끝자락의 에세이 독서모임이 있었고 신청 버튼을 살포시 눌렀다.
두 번째 모임에 가는 날에는 눈이 내렸다. 눈 오는 날의 독서모임이라니! 뭔가 낭만적인 느낌이 들었다. 모임 도서인 백수린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과도 잘 어울리는 날씨라는 생각도 들었다. 눈이 내려 조금은 포근한 겨울. 겨울이니 도란도란 모여 귤을 까 먹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귤 한 봉지를 사 갔다.
그날 A에는 첫날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내가 신청한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모임을 위한 테이블에도 여덟 명 정도, 첫 모임보다도 두 배는 많은 인원이 모였다. 복작복작한 것이 또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이번 모임은 조금 더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3부로 나누어진 책의 각 부에서 얘기 나누고 싶은 내용이나 문장을 자유롭게 말하는 방식이었다. 책이 좋아서였을까 1, 2, 3부 모두에서 난 어떤 내용이나 문장을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부분은 반려견을 떠나보낸 작가가 새로 반려견을 들이게 되고 그 아이에게 '내가 너에게 주는 사랑이 사실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닌, 내가 이전의 반려견에게 받은 사랑을 전달해 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사랑의 본질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전달해 주는 것. 다행히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다. 책의 내용이 따듯해서인지 참가자들도 그런 성격의 사람들이 모인 듯했고 그 덕에 분위기도 훈훈했다.
처음보다도 좋았던 두 번째 모임 덕분에 난 A에 자주 나와야겠다고, 이곳에 정을 붙여보자고 다짐했다. 앞으로 독서모임은 여기서 하면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뿐 아니라 A에서는 소설 쓰기 수업을 비롯한 여러 강의도 진행했으니 조금씩 더 많은 모임에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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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게 다 되지 않는 게 인생이듯이 A에 정 붙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모임 이후 한동안 독서모임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A가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전을 준비하면서 모든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던 탓이다. 생각보다 긴 시간, 거의 반년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더 좋은, 새로운 공간으로 옮기는 것이니 그래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봄이 되었고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A의 새 공간이 드디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엔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아닌 각자 나누고 싶은 책을 읽고 와서 이야기하는 모임에 참여했다.
새 공간은 물론 훌륭했다. 주택을 개조해 통으로 사용하니 외부인을 마주칠 일도 없고 오로지 독서모임만을 위해 단장해 놓아 책을 읽거나 이야기 나누기에도 좋았다. 새로운 공간에서의 첫 모임에는 이전의 모임과 다르게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더 많았다. 모임을 신청하면 책을 좀 읽게 될 거 같아 온 사람들이 전체의 1/3 정도였다. 그래, 독서모임이 그런 효과도 있지 하는 생각을 오랜만에 다시 하였다.
나는 이유리 작가의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라는 책을 가져갔다. 그 자리에는 이 책을 이미 읽은 사람이 두세 명 있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즐겁게 읽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각자 좋았던 단편이나 소설 전체의 분위기와 재치에 대해 얘기했다. 임선우 작가의 『유령의 마음으로』도 비슷한 느낌인데 너무 좋았다고 추천하니 역시나 이미 읽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참석한 데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이라 걱정을 조금 했는데 다시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한 번 더 A에 같은 모임을 신청해 방문했다. 이번에 들고 간 책은 동물권 변호사 박주연 작가가 쓴 『물건이 아니다』였다. 문학이 아닌 책을 읽고 싶었고 사회과학 책은 이야기할 거리도 많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동물의 권리에 대해 다루는 이 책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게 해주었다. 책에서 언급된 동물에 대한 가혹한 행위가 충분히 잔혹하지 않음으로 동물 학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례에 대해 얘기했을 때는 모두가 경악하기도 했다. 소설을 가져왔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의 문제를 얘기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주목했던 문제에 잠시나마 관심을 갖게 하는 경험을 했다.
여기까지가 A에서의 내 마지막 독서모임 활동이다. 조금, 아니 많이 급작스럽긴 하나, 정말로 이후엔 A에 방문한 적이 없다. A에서 기분 나쁜 사건이 있었다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A에 운영상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공간을 옮기며 A의 대표가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새 공간 운영 중에 대표가 한 번 더 바뀐 걸 보면 말이다.
그뿐 아니라 A의 어플이 서비스 종료되었고 가장 중요한 새로운 공간이 문을 닫게 되었다. 독서모임만으론 그 큰 공간을 운영하기는 힘들었던 탓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간을 잃으면서 독서모임이 또 한동안 중단되었다. 이후 어느 한 카페에서 모임을 작게 재개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미 난 다른 모임을 찾아 나선 후였다.
새삼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달았다. 물론 그 외에도 이미 너무 친해져 버린 관계, 사이에 끼어들기 어렵다는 문제도 다소 있긴 했다. 독서모임을 모르는 사람들과 운영한다면 새로운 사람이 왔을 때, 기존 모임원들의 유대감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틈을 만들어놓아야 함을 깨달았다.
A는 정을 붙일라 하면 멀여졌고 멀어질만하면 다시 다가왔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니 마음이 뜰 수밖에 없었다. 이때를 계기로 꾸준히 할 수 있는 안정적 모임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친구들과의 모임도 이때 처음 생각해 냈다.
지금도 A는 계속 운영 중인 듯하다. 나는 더 이상 A의 모임에 나가지는 않지만 그곳에서의 소중한 기억만은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A에서의 불안정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몇몇 독서모임에 안착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