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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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는 여러 종류의 활동들이 포함된다고 생각하며 그중에는 당연하게도 북토크 역시 들어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독서모임을 경험해 본 것인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북토크에 가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서울행 버스를 탔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난 간헐적으로 여러 독서모임에 참석해 왔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북토크라거나 어쩌다 좋아하는 작가의 북토크가 부산에서까지 열리면 신청하곤 했다. 물론 대학생 때는 북토크보단 GV를 더 많이 찾아다니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북토크는 가장 쉬운 독서모임이다. 책을 읽어가면 더 좋긴 하지만 꼭 읽어가지 않아도 괜찮으며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회자와 작가가 하기 때문이다. 북토크 참석자는 그저 작가의 얘기를 잘 들으면 되고 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기회를 봐서 하면 된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서모임의 모양새와는 다를 수는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기에는 북토크만 한 게 없다.
예전부터 꽤 많은 북토크에 다녔지만 본격적으로 꾸준히 여러 곳에 참석한 것은 서울에 정착한 이후이다. 사실 그전의 북토크들은 그 내용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기도 하니 2024년도부터 지금, 2025년 9월까지 참석한 북토크 몇 개를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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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의 두 서점에서 진행하는 일종의 북클럽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한 계절 동안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한 권씩 함께 읽는 형식으로, <서랍에 여름을 넣어두었다>라는 이름으로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 과 『소설가의 귓속말』 을 같이 읽었다. 분량을 정해두고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책을 함께 읽고 댓글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은 진행됐다. 그렇게 두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며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서랍에 여름을 넣어두었다>의 마지막엔 이승우 작가와의 북토크가 예정되어 있었다. 마침 그즈음 작가의 신간 『고요한 읽기』가 출간되었기에 북 토크는 이 책을 중심으로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행사에 참여하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기에 『고요한 읽기』 역시 행사 전까지 열심히 읽었다.
『고요한 읽기』 북토크의 주된 내용은 '읽기'와 '쓰기'였다. 책이 그런 이야기로 가득하니 보니 북 토크 역시 그 내용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 서점을 자주 찾는 이들 역시 읽기와 쓰기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이기도 했고.
쓰기에 대해서는 책방을 찾은 여러 독자들이 질문한 것을 위주로 진행됐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쓰고 싶어 했고 그 방법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이승우 작가는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부터 시작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4-5시간 이상의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 쓸 것이 없다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까지, 이제 막 쓰는 것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해주었다.
좀 더 한 장르에 집중해, '소설' 쓰기에 대한 질문과 대답도 많이 오갔는데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쓰기 위해서는 외면화가, 자기 경험이 아닌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위해서는 내면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쓰고자 하는 소설에는 반드시 '내'가 있어야 한다고.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라는 질문에는 첫 문장보다 두 번째 문장을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작가는 답했다. 앞의 문장을 유심히 바라보며 그다음 문장을 적어야 그곳에 깊이와 유기적 흐름이 생긴다고.
쓰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는 본받을 지점이 많았다. 나는 그동안 글을 써오며 이런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구나를 절실히 깨달았다. 물론 이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당장 나의 글 쓰기 실력이 향상되거나 아주 다른 글을 써내지는 못하겠지만 간간이 이승우 작가의 조언을 떠올리게 됐다. 내 기억 속에 가장 깊게 박힌 작가의 조언은 "머뭇거리며, 주저하며 쓴 문장에 무언가 들어있다. 거침없이 당당하게 쓴 글에는 어떤 향기가 없다."라는 말이다.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던 문제, 나는 글을 너무 휙휙 빠르게 쓴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 말은 내 가슴을 꽤 깊이 후벼 팠다. 말 하나, 단어 하나하나 고심한 글에 그 흔적, 더 깊은 생각이 담기는 건 당연할 것이다.
읽기에 대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승우 작가는 먼저 책, 독서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언급하였다. 우리, 작은 개인은 독서를 통해 회상하고 회고하며 미래와 미지의 세계, 영원까지를 꿈꾸게 된다고 말했다. 독서를 통해 삶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어떤 책을 읽을지 잘 골라야 함을 덧붙였다. 또한 책은 거울과 같아서 이를 통해 나를 비춰보기도 하며 세계를 보는 눈으로 작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국 책은 나를 더 잘 들여다보기 위한 무엇이라고. 작가는 책을 읽으며 메모할 것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메모는 내가 읽은 것을 붙잡아두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를 하지 않으면 모두 날아가 버리니 독서할 때는 꼭 메모할 것을 강조했다.
이승우 작가가 다른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다시 읽기'에 대한 것이었다. 책에 대한 업적주의를 주의하란 말을 하며 다 읽었다는 만족감을 경계하라고 얘기했다. 권수를 늘리려고 책을 읽다 보면 독서를 온전히 할 수 없다며, 자신 역시 한 책을 다 읽어갈 때면 빨리 끝내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요한 읽기』에는 성경에 대한 언급이 잦은데 북토크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었다. 성령이 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령이 쓴 책이란 곧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책, 나를 자극하는 책을 말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즉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하는 책으로 이런 책들이 두 번 이상 읽을 가치가 있으며 이 책만 읽어도 충분하다 하였다.
나에겐 책에 대한 업적주의가 있었다. 그것도 꽤 크게 말이다. 이런 용어, 개념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마음속에 조급함과 자랑하고 싶은 마음, 욕심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 달에 몇 권을 읽었는지를 신경 썼고 어쩌다 평소보다 많이 읽은 달에는 주변에 자랑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한 책을 두 번 이상 읽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책이 얼마나 큰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든 간에 말이다. 재독에 대한 것은 물론 이승우 작가의 견해일 뿐, 정답이란 건 없겠지만 나에겐 올바른 길로 느껴졌다. 우물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파보았지만 한 곳을 깊이 판 적은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보여주는 것보다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내 것'이 된 책은 거의 없었다. 수십 수백 권을 읽었지만 그중에 완전히 내 것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래서 이 북토크를 기점으로 다시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비록 아직 다독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놓치는 못했지만 조금이나마 재독의 길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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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재독은 조금 쉬운 혹은 독특한 방법으로 시작했다.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책을 종이/전자책으로 다시 읽거나 반대의 순서로 감상하는 것이다. 청예 작가의 『오렌지와 빵칼』을 오디오북으로 먼저 들은 후 전자책으로 다시 읽었다. 재독이란 게 원래 그렇겠지만 처음 읽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보였다. 잘 이해가지 않던 인물의 행동이나 내용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오디오북으로 들었을 때는 운동하며, 출퇴근하며 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시 읽으니 집중이 훨씬 잘 되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재독의 힘이구나! 이래서 좋았던 것을 다시 또 보고 읽고 듣는구나! 를 깨달았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소리와 글로 두 번 감상했다.
책을 듣고 다시 읽거나 읽고 다시 듣는 방식이 아닌 읽고 또 읽은 것은 북 토크를 가기 위해서였다. 김숨 작가의 『무지개 눈』 북토크였다. 김숨 작가는 오랫동안 좋아해 온, 나에게는 최애 작가인데 20대 후반까지 수도권 밖에서 살았던 내게는 그녀를 직접 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어느 날, 김숨 작가가 신간을 내어 북토크를 합정의 한 서점에서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일정이 있어 참여하지 못해 낙담하며 또 북토크를 하진 않나 출판사 계정을 며칠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다행히도 한 번 더 기회가 생겼다. 비록 인천에서 열리는 북토크였지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신청하였다.
북토크를 신청한 시점에 난 이미 『무지개 눈』을 한 번 읽은 상태였다. 분명히 이 책을 단숨에 읽었고 감동을 받은 기억은 있으나 그 내용을 설명하라 하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김숨 작가를 만난다면 어떤 얘기를 꺼낼 수 있을지, 어떤 질문을 뱉을 수 있을지 흐릿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읽어야겠다고, 그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좋았던 책이니 다시 읽어도 좋을 게 분명했다. 책장에서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놀러 가서 영화와 영화 사이, 뜨는 시간에 틈틈이 읽었다. 『무지개 눈』을 두 번째 읽을 때 느낀 감정은 충격이었다. 너무나 좋은 소설집이란 생각에서의 충격도 있었지만, 첫 번째로 읽었을 때 내가 너무 책을 음미하지 못했음을 느껴 받은 충격이었다. 첫 독서를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북토크에 참석하고 나서 다시 한번 재독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북토크는 인천의 한미서점에서 열렸다. 한미서점은 평소에도 점자, 점자책과 관련된 행사를 자주 하는 곳이었고 『무지개 눈』은 시각장애인 5명을 인터뷰한 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적은 소설로 이뤄진 책이었다. 장소와 책이 완벽히 어우러졌던 북토크였다. 김숨 작가의 요청에 따라 둥글게 둘러앉는 느낌으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자리가 조금 좁아 보이자 그녀는 괜찮다면 본인 옆에 앉아도 된다고 말했다.
『무지개 눈』 북토크는 작가가 주로 말하기보다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독자가 좋았던 부분과 그에 대한 감상, 질문을 말하면 답을 해주는 식이었다. 이 역시 김숨 작가가 요청한 바였다. 한미서점의 사장님부터 시작해 대다수의 사람이 말을 꺼냈다. 책을 읽으며 감동을 받은 부분과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얘기부터 한국에서 다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김숨 소설가님일 거라는 기분 좋은 아부, 시력이 좋지 않은 가족에 대한 고백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서점 사장님을 제외하면 난 유일하게 두 번의 발언을 한 독자였는데, 처음에는 책 속 시각장애인인 인물이 자신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대사들에 대해 얘기했다. 이전에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를 읽으며 비슷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고 얘기했다. 같은 생각을 다른 책에서, 에세이에서 봤던 내용을 소설에서 보니 신기하면서도 새로웠다 말했다. 한참 후 북토크의 후반부에는 참지 못하고 나도 아부를 해버렸다.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을 얘기하며 정말 감탄했다, 너무 잘 쓴 문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했고 혹시 작가님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아! 내가 썼지만 정말 잘 썼다!라는 부분이 있는지 물었다. 다들 웃음을 터트렸고 겸손하신 김숨 작가는 그런 부분은 없다고 답했다. 이런 질의응답 외에도 김숨 작가는 인터뷰와 집필 과정에서의 비하인드나 책이 출간된 후 있었던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북토크, 인터뷰이들의 책에 대한 귀여운 반응까지 들려주었다. 만약, 내가 한 번 읽었으니 굳이 또 읽지 않고 참석해도 되겠지란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나갔다면 이 화기애애하고 진솔한 분위기에 끼지 못했을 것이다. 보는 것은 곧 주는 것이라는 말이 오래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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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후 한유주 작가의 『계속 읽기』 출간 기념 북토크에 참가했다. 이 책 역시 읽기에 대해 쓴 책이었다. 이 북토크는 담당 편집자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첫 질문은 다시 읽기에 대한 것이었다. 『마담 보바리』를 20회 이상 읽었단 내용이 『계속 읽기』에도 쓰여 있지만 이를 한 번 더 언급하며 이것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라고 편집자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많이 그 책을 읽게 된 건지 물었다. 한유주 작가는 어렸을 때 읽고 대학생 때 읽고 대학에서 수업을 하며 또 여러 번 읽게 되었으며 다시 읽어도 또 좋은 책은 흔치 않은데 이 책이 그랬다고 말했다. 그러자 편집자는 두 번, 세 번, 그 이상 반복해서 다시 읽게 되는 이유와 그 감각에 대해 설명해 달라 했다. 작가는 특정 시기에 생각나는 책들이 있는데 봄에는 사카구치 안고의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서』를 읽는다고 예를 들었다. 혹은 어느 한 문장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을 때 읽는 책들도 있는데 울고 싶어질 때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고 싶어질 거라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시기에 따라 같은 책이 다르게 읽히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상태, 상황, 감정에 읽고 싶은 책이 있다. 한 달, 반년이 아니라 아주 긴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꺼내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내게 그런 책은 무엇일까. 재독을 몇 번 더 하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