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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독서모임

좋은 소설

by 지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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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믿고 읽는, 신간이 나오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구매하는 작가가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어느 시인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소설가나 연구자, 비평가가 그런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 믿고 읽는 독자의 수가 많을수록 팬층이 두터운 작가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많은 독자를 거느리는 작가는 그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될 것이다. 그런 작가가 누가 있을까?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믿고 읽는, 사랑받는 작가로 김애란 작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같은 소설집부터 『두근두근 내 인생』등의 장편까지, 그녀가 쓴 글은 많은 이들이게 깊은 사랑을 받아왔다. 소설을 조금 읽어본 사람도, 아주 많이 읽어본 사람도 김애란을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고. 그렇기에 2024년, 오랜만에 그녀의 새 소설, 그것도 장편이 나왔을 때, 망설임 없이 구매하였고 북토크 기회 역시 놓치지 않았다.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 출간되었을 때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아 여전히 김애란은 김애란이구나를 느끼며 신청해 놓은 북토크를 즐겁게 기다렸다. 『이 중 하나는 거짓말』로 하는 첫 북토크였기에 더 기대가 되었고 사회자가 신형철 평론가로 역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였기 때문에 더 기대되기도 했다.

북토크는 서울 강남의 건설회관에서 진행됐다. 작은 서점이나 출판사 건물이 아닌 그렇게 큰 공간에서 진행하는 북토크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모집 인원이 많았기에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직접 그 많은 인원이 강당 안을 가득 채운 걸 보자 새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여태껏 내가 가본 행사들은 많아봤자 서른 명 안팎이었는데... 600명이란 숫자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괜히 기대가 더 커져갔다.


나름 앞쪽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가장 맨 앞줄에 김애란 작가가 보였다. 주변의 사람들과 인사하고 대화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 공간에 대기실 없이 나와서 계시는구나 싶었다.

잠시 후 북토크가 시작됐다. 진행을 맡은 신형철 평론가는 <달려라 아비>로 김애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며 물꼬를 텄다. 당시 여러 원로 작가들이 신인 김애란을 칭찬하고 궁금해했다는 이야기로. 역시 떡잎부터 달랐구나, 나름 내가 먼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늦은 편이었구나를 느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김애란 작가에게 묻는 첫 질문은 장편이 나오는데 1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김애란 작가는 장편을 쓰는 것에서 중요한 지점, 서사와 이야기의 재미에 대해 짚으며, 이것을 잘 살리면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장편을 쓰다 보니 너무 재미에만 치중하여 돌이켜보니 이야기에 마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쓰고 고치고 버리고 하다 보니 13년이 걸렸다고 했다. 물론 13년 동안 이 장편 하나만을 쓴 것이 아니고 여러 단편이나 다른 종류의 글도 쓰면서 여러 시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편을 써서 공개하는 데 13년이란 시간이 걸린 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한 이야기를 13년 동안 품고 쓰고 고치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너무 쉽게 쓰고 그렇기에 쉽게 내려놓는 내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끈기이다. 다시 한번 짚어보는 나의 문제, 너무 쉽게 쓰고 빠르게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는 점. 그만큼 포기도 빠르다는 점.

이어서 신형철 평론가는 몇 년 전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그 당시, "빛과 거짓말,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장편에 대해 설명했던 게 그대로 책으로 나왔는지 물었다. 김애란 작가는 <두근두근 내 인생>을 쓸 때 더 고친 뒤 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웠기에 이번엔 더 여유롭게 시간을 두고 수정한 뒤 책을 내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되진 않았다고 했다. 이야기는 쓰면서 계속 달라졌고 뒤늦게 알아챈 주제도 있기도 했기에. 그렇기에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때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렸다면서, 로미오가 처음부터 줄리엣을 좋아한 게 아니라, 로잘린을 좋아했듯이, 자신도 지금은 로잘린을 만나고 있는 시기일 뿐이고 곧 줄리엣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비유와 생각마저 소설가 그 자체구나, 싶은 말이었다.

소설에 대한 신형철 평론가의 감상, 사실은 극찬인 실망스러웠던 점 - 너무 짧아 아쉬웠지만 읽고 나서 해결되었다는 것과 자신과 작가의 연령대가 아닌 10대의 고민과 이야기라 아쉬웠지만 오히려 작가가 성실하게 취재하고 고민한 것이고 훌륭히 표현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서는 본격적으로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가족, 거짓말, 이야기'라는 세 키워드를 중심으로.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가족에 대해서는 '모두가 가족 안에서 어떤 몫이나 역할을 맡고 있다'는 말, '진정한 자립이란 의존하지 않는 게 아니라 여러 의존처를 가지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모두가 가족이란 집단 안에서 어떤 특정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보호자, 중재자, 분위기 메이커 등등.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이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가지일 때가 더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여러 의존처를 가지는 게 자립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도 연결 지어 해 보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거짓말 그중에서도 소설에서 나오는 네 개의 진실과 하나의 거짓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 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에 대해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질문이 이어졌다. 김애란 작가는 사실 자신에게 쌍둥이 자매가 있고, 교사인 그녀와 통화를 하다 학기 초에 이 게임을 통해 자기소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아! 쌍둥이셨구나! 북토크 시작 전, 맨 앞줄에 있던 사람은 김애란 작가가 아닌 그녀의 쌍둥이 자매였던 것이다. 다시 거짓말로 돌아와, 신형철 평론가는 이 게임에서 중요해 보이는 것은 사실 네 개의 진실이 아닌 한 개의 거짓 같다는 말을 했다. 어떤 거짓을 말할 것인가가 오히려 더 큰 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김애란 작가는 그 말을 들으니 소설이란 게 아주 공들여 쌓은 거짓말 같다는 대답을 했다. 하나의 거짓말을 위해 99개의 진실이란 벽돌을 쌓는 일 같다고 말이다. 정말로 그렇다. 소설을 조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소설이 허구라고들 하지만 그 허구를 가짜가 아닌 진짜로 만들기 위해서는, '있을 법한 허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진실을 쌓아 올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고백이나 편지로 끝맺는 김애란 작가의 탁월한 기술 그리고 다음 장편에 대한 질문에 이어 마지막 키워드 '이야기'에 대해 넘어갔다. 작중에 나오는 이야기가 왜 좋냐는 질문에 지우와 소리, 두 인물은 이야기에 '끝'이 있어서와 이야기에 '시작'이 있어서라고 답한다. 그럼 김애란 작가는 왜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어렸을 때는 교훈, 도덕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재밌을 수 있는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만으론 만족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딜레마가 있거나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 이야기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짚었다. 이 역시 소설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감 가는 의견이었다. 당연히 이야기를 좋아하는 첫 번째 계기, 이유는 재미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재미의 기준은 제각각이겠지만) 그렇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접하다 보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진다. 재미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되지 않을 때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읽는 이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는 것, 선택을 하게 만드는 갈림길이다. 이야기에 직접 참여하게 만듦으로써 독자는 더더욱 몰입하게 된다. 그 문제가 복잡하고 다차원적일수록 몰입하는 이는 더 깊게 빠져든다.


몇 개의 독자 질문을 받고 나서 신형철 평론가는 북토크를 마무리하며 글에 대해 감상을 말하거나 평가할 때 지적하는 데 사용되는 어휘는 너무나 많은 데 비해 그 작품의 좋음을 설명하는 어휘는 너무 적다는 아쉬움을 꺼냈다. 그러면서 좋은 소설에 대한 어휘로 자주 사용되는 '위로'라는 단어를 넘어 이 소설의 좋음을 더 잘 표현하고 싶다고 말하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좋은 소설, 좋은 이야기, 좋은 거짓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그건 좋은 이야기, 좋은 거짓말과 어떻게 같고 다른 걸까? 좋은 거짓말이 모여 좋은 이야기가 되고 좋은 이야기가 모여 좋은 소설이 되는 걸까?

앞선 얘기들을 떠올려 보니 다시 한번 좋은 소설과 이야기 그리고 거짓말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진실과 신뢰가 밑받침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든다. 하나의 소설/이야기/거짓 밑에 묵직하게 쌓여있는 진실. 두둑이 쌓아놓은 진실들을 보니 그 위의 거짓이 진실 같아 보이기도, 진실이 아닌 걸 앎에도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를 포함해 많은 독자들이 김애란 작가를 좋아하고 기다리는 것은 그녀가 하는 거짓말이 진실 같아서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녀가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거짓말을 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거짓이라면 믿고 싶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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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일 년쯤 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소설가이자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다와다 요코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일본(명시되진 않지만 일본으로 보인다)이 침몰한 세계관,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해 살아가던 일본인 Hiruko가 자신과 같은 모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찾아 떠난 여정을 그린 3부작 소설 『지구에 아로새겨진』, 『별에 어른거리는』, 『태양제도』를 중심으로 한 북토크였다. 한국 작가의 북토크는 한두 번 놓치더라도 기회가 또 있겠지 싶지만 외국 작가의 대면 북토크는 그렇지 않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시리즈의 첫 번째인『지구에 아로새겨진』은 예전에 읽었고 다른 두 권은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상태였다. 읽어야 할, 먼저 읽고 싶은 책이 이미 많았지만 그래도 『별에 어른거리는』까지는 읽고 북토크에 가자는 생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한 권이라도 더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은 북토크가 끝나기도 전에 들었다.


북토크는 『지구에 아로새겨진』의 추천사를 쓰기도 한 장혜령 시인의 사회로 진행됐다. 그녀가 하는 다섯 가지 질문과 답변, 한국어와 일본어로의 낭독 그리고 독자 질문으로 구성된 북토크였다.

북토크의 내용을 따로 기록해두지 않아서 그 내용은 벌써 잊어버렸다.(다시 한번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북토크 내용을 기록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기록하지 않았다곤 하지만 그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것에는 공통된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 질문과 답변이 아주 길고 깊었기 때문이다. 장혜령 시인의 질문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한두 마디로 묻는 질문이 아니라 5분 정도는 말해야 끝날 정도로 상세하고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을 하였다. 그런 질문에서 한두 마디의 답변이 나올 리가 없다. 당연히 길고 꼼꼼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것들을 모두 적다가는 오히려 아무것도 듣지 못할 거 같았다. 비록 지금처럼 그 내용을 모두 잊더라도 그 순간 듣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북토크 내용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느낌은 남아 있다. 특히 낭독에 대한 느낌은 더더욱 남아 있다. 『지구에 아로새겨진』의 한 부분을 장혜령 시인이 번역된 한국어로, 다와다 요코 작가가 모어인 일본어로 낭독했다. 한국어 낭독을 들으며 우리는 어떤 부분에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일본어 낭독 중에는 많은 사람이 듣기만 했지만 몇몇 사람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도 했다. 두 낭독이 모두 끝난 후 다와다 요코는 같은 텍스트를 낭독하지만 낭독하는 국가, 언어마다 사람들이 웃는 부분이 다르다고 얘기했다. 글은, 그 내용은 같은데 어떻게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쓰인 언어, 읽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감상이 달라진다는 점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언어가 그 사용자의 생각,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일까?라는 생각에 이어 언어와 사고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북토크의 마지막 순서로 독자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마지막 질문을 하게 되었다. 간발의 차이로 얻어낸 기회였다. 내가 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만은 뚜렷하게 기억나는데, "이 시리즈에서 나온, 인물이 새로 만들어 사용하는 판스카 같은 언어나 인물의 독특한 언어 습관, 그리고 『글자를 옮기는 사람』에서의 소설과 소설 속 인물이 번역하는 내용이 섞이는 등 '언어' 자체에 대해 작가님의 관심이 깊다는 생각이 드는데, 소설을 쓸 때 언어를 어떻게 활용할지 미리 구상하는 편인지 그리고 언어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이신지"를 물었다. 다와다 요코 작가는 작품 구상과 함께 언어적 장치를 구상한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그녀는 자신에게 언어는 하나의 등장인물이라고 말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처럼 언어 역시 하나의 인물로서 작용한다고. 언어가 하나의 등장인물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물론 다와다 요코라는 작가에게 있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는 조금 알고 있었지만 그걸 이렇게 생각하고 표현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난 언어를 그저 읽고 쓰는 도구 정도로 생각했다는 깨달음과 그 단순함에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언어'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었다는 자책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언어를 대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남는 자리였다.


두 북토크를 통해 생각해 보았다. 소설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좋은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에 대해 두 작가의 말을 통해 끌어올린 것, 잘 쌓아 올린 진실 위에 얹힌 하나의 거짓 그리고 마치 등장인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작가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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