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대표작은 무엇입니까?

MBC <나 혼자 산다> 이시언 하차를 보고

by 날갯짓

12월 25일 금요일 늦은 저녁 MBC <나 혼자 산다>를 봤다. 무지개 회원 중 ‘얼장’의 역할을 맡고 있던 이시언 회원의 이별 여행에 대한 내용이었다. 5년 간 <나 혼자 산다>의 큰 형, 큰오빠로서 든든하게 멤버들을 지지해주던 그가 이제 본업인 연기에 집중한다고 한다. 다른 예능들에서 흔하게 봐왔던 (멤버의 사건, 사고, 스캔들로 인한) 부득이한 하차가 아니라, 연기에 진심으로 몰입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아마 그 선택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거다. 그의 눈물도 그걸 증명하는 것 같고.

MBC 최대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 혼자 산다>는 이시언을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 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남자 최우수상도 수상하게 해 줬고, 배우로서 잘 몰랐던 그를 대배우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무지개 회원이라는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줬다. 다들 느끼겠지만, 삼십 대가 되면서 그렇게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물론 프로그램을 하차한다고 해서 인연이 끊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전처럼 매주 고정적으로 만나고 연락하는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소홀함이 생길 것이다. 어쨌든 그는 <나 혼자 산다>를 하차했다.

왜 그는 이렇게 소중한 프로그램을 하차했을까. 본업인 배우 또한 연예계 쪽이니, 그저 프로그램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배역을 따면 될 일이었다. 그간 해왔던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크고 작은 역할이나, <아내를 죽였다>의 주연으로 연기하기 까지도 <나 혼자 산다>의 영향력이 1도 없다고는 하기 어렵다. 프로그램에서 홍보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그는 이 모든 걸 내려놓았다. 박수 칠 때 떠났다.

아마 매너리즘이 왔을 것이다. 다른 무지개 멤버였던 박나래, 기안, 헨리 등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승승장구하고, 다들 대표작이 있다. 이시언 배우의 대표작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나 혼자 산다>였다. 연기자라기보다는 예능인으로 주목받은 자신에 대해 깊게 고민했을 거다. 2년 넘게 고민했다고 했던 그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나에게도 대표작이 있을까. 배우나 연예인 쪽이 아니면 보통은 내가 맡고 있는 업일 것이다. 나는 여행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코로나로 쉬고 있다. 올해를 제외하고도 5년 넘게 여행사를 다녔다. 내 대표작은 여행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로 오랜 기간 일을 쉬다 보니 특이점이 왔다. 내가 내 대표작을 좋아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계속 이 일을 해야 할지 고민됐다. 사실 이전에도 애사심은 있어도 여행업에 대한 사명은 별로 없었다. 그저 사람과 분위기가 좋아서 다닌 게 더 컸다. 여행사의 네임벨류도 한몫했다. 그간의 직무도 영업 기획과 콘텐츠 기획 쪽에 맞춰져 있다 보니 여행에 대한 일을 직접적으로 겪는 건 다른 동기들에 비해 적었다. 그래서 설렘이 부족했다. 반대로 내 주변에 코로나로 쉬고 있는 친구들은 (쉰다고 쓰고 버틴다로 읽는다) 대표작인 여행업을 대부분 그리워한다. 모두 코로나가 회복되고 다시 설렘을 느끼며 여행을 팔고 싶어 한다. (물론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이직 준비하는 친구도 많다.)

내게 생긴 이 헷갈림은 코로나로 인한 강제적 휴식의 불안, 경력단절, 사회 구성원으로 몸은 멀쩡한데 일하지 않는 자의 죄책감일까. 아니면 업 자체, 내가 몸 담고 있는, 나를 소개할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대표작 자체에 대한 고민일까. 음. 둘 다 인 것 같기도. 어깨가 아프다.

앞서 말한, 이시언이 박수 칠 때 떠나는 상황과 지금의 내 상황이 같지는 않다. 나는 손뼉 칠 때가 아니다. 또, 돌아갈 자리도, 집중할 무엇도 마땅치가 않다. 반강제적인, 암울한 상황이다. 그래도 그와 같은 게 있다면, 기존의 해왔던 것을 내려놓고 무언가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 하나이다. (요즘,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경력과는 조금 달라 진입할지 말지 고민되지만, 무언가 집중할게 생겼다는 사실에 기쁘다.)

참고로, 나는 이시언 배우의 팬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행보에 박수 쳐주고 싶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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