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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강부약(抑强扶弱),대동세상(大同世上)

by 정성현

억강부약(抑强扶弱),대동세상(大同世上)


1.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억강부약(抑强扶弱)


어원과 고전에서의 모습

억강부약(抑强扶弱)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우라”는 뜻이다.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고전 자료는 분명치 않지만, 후대 사서와 주석들이 이 개념을 여러 맥락에서 인용해 왔다.

한자 사전에는 “抑强扶弱 — 壓制强橫的人而扶助弱小”이라는 정의가 실려 있다. dict.concised.moe.edu.tw+1 또다른 자료에는 “抑强扶弱”의 동의어가 “扶弱抑强” 형태로도 쓰인다는 기록이 있다.

유교 전통 내에서는 이념적으로 강자와 약자 사이의 도덕적 균형을 중시하는 흐름이 있었고, 억강부약은 그런 균형 추구의 표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다만 “억강”이 강자를 완전히 제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순히 힘의 과잉·횡포·부당한 특권을 제어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일정한 보호와 기회를 부여하자는 방향이다.


사상적 의미와 함의

억강부약은 곧 정의와 공평, 균형을 향한 선언이다. 그의 내부에는 다음과 같은 함의가 숨겨져 있다:


강자의 도덕적 책임 강조
강자는 단순히 힘이 있으니까 더 누려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책임과 절제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제어
강한 자들이 구조적으로 더 유리해지는 제도적 장치—특혜, 독점, 불공정한 관행—을 제한하고 제어하자는 뜻이 담긴다.


약자 보호만이 아니다—기회 확대
단순히 약자를 ‘도와주는’ 복지 차원을 넘어, 약자가 스스로 설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자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게 중요하다.


역동적 균형의 추구
사회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계속 변화한다. 강자와 약자의 위치가 바뀔 수 있고, 누군가가 과도하게 기울어지면 다시 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고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균형을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강자의 반발, 정책의 비효율, 미시적 역학 등이 억강부약의 이상을 가로막는다.


2. 이상향의 사회, 대동세상(大同世上)

대동의 뿌리: 공자와 『예기』


“대동(大同)” 사상은 유교의 이상사회 비전 중 하나로, 공자는 『예기(禮記)』의 「예운(禮運)」 편에서 대동사회를 이렇게 묘사했다:


“大道之行也,天下爲公……使人無慝欲。使老有所終,壯有所用,幼有所長,鰥寡獨孤廢疾者皆有所養。男有分,女有歸。”
(큰 도가 행해지면 천하는 모두 공공의 것이 된다… 사람들이 사사로움을 버리고 욕심 없이 살게 된다. 노인은 여생을 마치고, 중년은 쓸모가 있으며, 아이는 성장하고, 홀로된 사람이나 거동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양육이 제공된다…)


이 구절은 “천하를 공(公)으로 삼는다(天下爲公)”는 말과 연결된다. 즉 사회 전체가 사사로운 이해관계보다 공적인 이익을 우선하는 질서가 되는 것이다.


『소강사회와 대동사회』라는 구분도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소강(小康) 사회 수준에서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다가, 점차 대동(大同)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발전 모델이 이론적으로 제시되곤 한다.


대동의 이상적 구성

공자가 제시한 대동사회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다:

공공 중심의 질서: 사사로운 욕망과 개인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이익이 먼저 고려된다.


무소유와 배분의 균형: “사람들이 재화를 사사로이 저장하지 않으며”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지나친 사유와 독점이 없는 상태를 이상으로 본다.


사회적 약자 보장: 노인, 어린이, 병자, 무의탁자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이 보장되는 사회.

계급이 없는 이상: 문답이나 모략이 사라지고, 절도나 부정부패가 없는 세상.

개인의 덕성과 능력 중시: 혈통·지위보다는 덕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는 사회.


이러한 이상은 유교적 전통이 지향해 온 정화된 정치 윤리와 인간 중심의 조화된 삶이란 관념과 깊게 연결된다.


한국 전통과 대동 사상

한국에서는 공자의 대동 사상과 함께, 고유한 사상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연계해 해석되기도 한다.

일부 전통문화 논자들은 “대동(大同)”을 “한민족 모두가 조화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계”와 연결 짓는다.


또, 선교 사상 등 전통 종교철학에서도 대동(大同)과 무등대동(無等大同) 개념이 제시되며, 모든 존재가 차별 없이 하나로 어울리는 이상세계로 해석된다.


3. 이재명 대통령의 “억강부약, 대동세상” 구호 속 담론

이제 이 전통적 개념들을 이재명 대통령이 인용한 방식과 그 맥락 속에서 살펴보자.


정치적 표상으로의 차용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연설과 여러 공식 연설에서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국정의 핵심 철학으로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강자와 약자의 격차, 불공정 구조, 특혜와 반칙 관행 등을 이 시대의 문제로 보고, 이를 억강부약의 원칙으로 풀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왔다.


그의 연설문 중 하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공평하게 기회를 함께 누리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우리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

또, 취임사에서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 만들 것”이라는 선언을 포함했다.


정책적 연결 가능성

억강부약, 대동세상이라는 구호는 단순히 상징적 슬로건이 아니라, 아래 같은 정책적 담론과 연결될 여지가 있다:


노동·고용 안정 : 초단시간 노동자 권리 보장, 근로시간 규제 완화 혹은 보호 강화

복지 확대 : 사회안전망 확대, 기본소득 논의, 약자 대상 지원 강화

공정 경쟁 규제 : 대기업·재벌의 특혜 제한, 반독점 법안 강화, 특례 축소

통합과 갈등 치유 : 편 가르기나 혐오를 넘어선 국민 통합과 상생 메시지 강조


하지만 이런 이념을 실제 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제약이 많다. 시장 메커니즘과 정부 개입 사이의 긴장, 재정 제한, 구조적 이해관계 충돌, 제도 구현의 어려움 등이 그것이다.


비판과 도전

일부 언론과 평론가들은 억강부약이 포퓰리즘적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강자나 기득권을 적대시하는 편가르기 전략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시장 원칙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방향이 되면 경제적 역동성을 해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 “억강부약”을 선언하면서도 실제 구조적 권력은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 — 이 반복적 도전이 될 것이다.


4. 이야기로 그려보는 이상과 현실

한 마을에 두 집이 있었다.
한 집은 부유하고 권세가 있었고, 다른 집은 가난하고 일손이 부족했다.
부유한 집의 주인은 자기가 가진 것을 더 쌓아가려 했고, 가난한 집의 사람들은 매일 벌어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이 말했다.
“너희 마을은 부자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구조야. 이건 정의가 아니야.”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 규칙을 정했다.
강한 집은 자신이 가진 권한을 절제하고, 약한 집에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규칙을 함께 지키자고.

이 규칙이 바로 억강부약의 정신이고, 사람들은 그 뒤를 이어 “모두가 함께 살자”고 외치며 대동세상을 이야기했다.


이런 이상은 단지 문학적 허구가 아니다.
고전 속에서도, 수많은 사상가들이 인간 공동체의 정의와 조화를 고민해 왔고, 현실 정치에서도 누군가는 그것을 소환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억강부약, 대동세상”을 외치는 것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오래된 이상을 다시 현대의 국정 철학으로 소환하겠다는 시도다.
그 말 속에는 “더 강한 쪽만 살 찌는 나라가 아니라, 약자도 숨 쉬는 나라”, “기득권만의 리그가 아니라 기회가 평등한 나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쉬운 과제는 아니다.
이념은 번지르르하지만, 정책은 이해관계와 한계와 충돌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치인의 구호 뒤에 숨은 실천 역량, 제도 설계, 사회적 공감과 연대를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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