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이재명 대통령은 공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공평하게 기회를 함께 누리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우리 함께 만들어갑시다.”
단어만 보면 다소 낯설다. 억강부약(抑强扶弱), 대동세상(大同世上). 마치 고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말들이 왜 지금 다시 울려 퍼졌을까? 그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적 갈등과 불평등을 설명하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의 갈등은 오래된 화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거래 구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 차이,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
부동산 자산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
예를 들어 보자.
2024년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 원을 훌쩍 넘겼다. 지방의 아파트 가격과는 수 배 차이가 난다. 주거권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지만,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른 궤도로 나뉜다. 이 상황에서 “억강부약”은 곧, 부동산 시장에서 소수의 강자가 독식하는 구조를 제어하고 무주택자와 청년에게 기회를 확대하자는 사회적 요구로 읽힌다.
또한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은 고용 안정성과 임금에서 유리하지만, 플랫폼 노동자·특수고용직·비정규직은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되기 쉽다. ‘억강부약’은 곧 이 불균형을 완화하고, 노동시장에서 약자에게 제도적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는 신호다.
대동세상은 단순한 이상향이 아니다. 현대 한국에서도 그 이상은 구체적인 정책과 삶의 현장에서 울림을 가진다.
노인 돌봄: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한국에서, 홀로 사는 노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게 돕는 제도는 곧 대동의 정신을 잇는 일이다.
장애인 권리 보장: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보여주듯, 사회적 약자도 동등하게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청년 세대 지원: 청년 기본소득, 주거 보조, 교육비 경감 같은 정책들도 결국은 사회의 미래 세대가 출발선에서 너무 불리하지 않도록 하자는 대동 정신의 현대적 실현이다.
대동세상은 “모두가 같은 집에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고 함께 가는 질서를 뜻한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신분을 가르는 잣대다.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나 보유세를 강화할 때마다 “억강부약”의 논리가 함께 언급된다. 과도하게 쌓인 부동산 자산이 사회 불평등을 확대한다면, 그것을 제어하고 무주택 서민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세금폭탄”이라는 반발도 거세다. 억강부약을 실천하는 과정이 늘 순탄치 않은 이유다.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 기사, 프리랜서 강사… 플랫폼 경제 속에서 새로운 노동 형태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고용보험, 산재보험, 퇴직금 등 기본적 권리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안과 정책은 전형적인 억강부약 사례다. 강자의 시장 독점과 약자의 취약한 지위를 조정하는 장치인 셈이다.
기후 위기의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폭염은 노인과 취약계층의 생명을 위협하고, 재난 상황은 사회적 약자의 생존을 더 어렵게 한다. 이 맥락에서 탄소중립·에너지 전환 정책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대동적 접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교육 시장이 거대해지면서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미래를 좌우하는 사회가 되었다. 무상 교육 확대, 기초학력 보장 정책은 억강부약의 한 예다. 약한 출발선에 선 아이들을 돕는 것이 곧 사회 전체의 역동성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크다. 억강부약은 종종 “강자를 누른다”는 반발을 낳고, 대동세상은 “비현실적인 꿈”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부동산 규제에 대한 기득권층의 저항, 복지 확대에 대한 재정 논란, 공정 담론을 둘러싼 세대 갈등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억강부약과 대동세상은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에 가깝다. 이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조정과 타협,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억강부약은 힘의 불균형을 조정해 정의를 세우는 일이고, 대동세상은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를 향한 비전이다.
오늘의 한국은 부동산 격차, 세대 갈등, 고용 불안, 기후 위기 등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고전을 소환해 “억강부약, 대동세상”을 외친 이유는 분명하다. 오래된 이상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상은 거대한 정치 구호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듯, 하루하루의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회 곳곳에서 강자의 특권을 제어하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제도와 문화가 자라날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대동세상의 길 위에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