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보다 더 중요한 건, 중심을 잡는 나의 손끝이다.
관중보다 더 중요한 나의 손끝
관중보다 중싱이 더 중요하다
관중보다 더 중요한 건, 중심을 잡는 나의 손끝이다.
화살은 내 손끝의 떨림을 숨기지 않는다. 우암정 사대에 선다. 활을 들고 과녁을 바라본다.
과녁을 맞히고 싶은 마음이 먼저 손끝에 올라온다.
그 작은 욕심 하나가 고요한 집중을 깨뜨리고, 화살은 그 떨림을 따라 빗나간다.
그럴 땐 괜히 바람을 탓한다. 활줄이 이상하다고도 한다.
“오늘은 바람이 까다롭네.” “활이 말을 안 들어.”
나는 오늘도 환경과 장비 탓을 한다. 하지만 돌아서며 알게 된다. 내가 흔들린 거구나.
과녁은 단 한 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을 뿐이다.
문제는 언제나 내 안에 있다.
관중은 결과일 뿐, 정말 중요한 건 화살을 쏘던 그 순간, 내가 중심을 붙들고 있었는가이다.
사람들은 활쏘기를 ‘맞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활을 오래 곁에 두고 보면 알게 된다. 진짜 중요한 건 중심이다.
중심이 무너진 채 쏜 화살이 우연히 과녁에 꽂힐 수도 있다.
그건 내 화살이 아니다. 그건 운이다.
정직하게 서서, 정확히 숨을 들이쉬고, 곧은 마음으로 시위를 당긴다.
그 화살이 과녁을 비껴가더라도 나는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활은 정직하다. 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정확히 보여준다.
화살 하나를 들면, 나는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살핀다.
화살이 곧은지, 화살이 올바른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도록 보조하는 궁깃이 잘 붙어 있는지,
이전에 쏘면서 구부러지거나 망가진 데는 없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화살을 들고 있는지.
화살은 기억한다. 화살을 잡는 행위는 자신의 의도와 마주하는 것이다.
내가 쏘는 마음까지도. 전설 속의 궁사는 단 하나의 화살로 적의 배를 침몰시켰다고 한다.
그는 배의 약점을 꿰뚫고, 고요히 스며든 물로 마을을 지켰다.
화살은 작지만, 의도를 품으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된다.
내가 날리는 화살도 마찬가지다.
그 여정엔 바람도 있고, 중력도 있지만 모두가 그 의도를 도와주는 일부일 뿐이다.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중심, 올곧고 단단한 마음이다.
과녁은 늘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내 시선은 그보다 깊은 곳, 내 안의 중심을 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