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습사무언(習射無言)국궁장에서 배우는 침묵의 힘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by 정성현 칠십대 삶을 기록하는 사람

<15편>습사무언(習射無言)-국궁장에서 배우는 침묵의 힘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국궁에는 국궁9계훈(國弓九戒訓)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활쏘기를 배우는 사람이 지켜야 할 마음가짐을 정리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이 있다.

바로 습사무언(習射無言)이다.

습사무언은 말 그대로 활을 익히고 쏠 때는 말을 삼가고 침묵을 지키라는 뜻이다.


국궁장에 오래 다니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점점 더 깊이 느끼게 된다.

국궁장에 가면 활을 쏘기 전 잠깐의 휴식 시간이 있다. 보통 10분 정도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 휴대폰을 보거나 조용히 쉬고 있다.

국궁장은 비교적 조용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막상 사대에 올라 활을 쏘려고 서면 조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 바람이 세네요. 화살이 잘 맞는데요. 화살이 좀 왼쪽으로 간 것 같아요.

사소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나도 처음에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활을 잡다 보니

사대에서 들리는 말소리가 점점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활을 쏘는 순간은 생각보다 섬세한 시간이다.

활을 잡고 숨을 고르고 몸의 균형을 잡고 천천히 활을 당긴다.

그 짧은 순간에 마음이 흔들리면 화살도 흔들린다.

그래서 활쏘기에서는 기술보다 먼저 마음의 안정을 이야기한다.

마음이 고요해야 호흡이 안정되고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화살은 자연스럽게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활쏘기에는 이런 말도 있다.

“활은 몸으로 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쏜다.”정말 그런 것 같다.

마음이 급하면 화살이 흔들리고 욕심이 생기면 손에 힘이 들어간다.

반대로 마음이 고요하면 활쏘기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활쏘기를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수양으로 여겼다.


얼마 전에는 정희동 시인의 시 「습사무언」을 궁도장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참으로 마음에 남는 말이다.

화살은 과녁으로 날아가도 다시 가서 주울 수 있다. 하지만 말은 다르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시 주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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