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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놓아 주고 나를 겨누는 연습

– 호살은 날아갔다. 남은 건 나 뿐이다

by 정성현

결과를 놓아 주고 나를 겨누는 연습

- 화살은 이미 날아갔다, 남은 건 나뿐이다


활시위를 놓는 순간, 왼손은 앞으로 밀고 오른손은 뒤로 빠진다.

양팔은 활짝 벌어지고, 가슴은 넓게 열린다.

자세가 고요히 정리된 채, 시선은 과녁에 닿아 있지만

그 안쪽엔 내 마음의 중심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바깥을 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 자신을 겨누고 있다.

활쏘기는 단순히 화살을 날리는 동작이 아니다.


손끝의 감각, 팔의 균형, 복식호흡의 깊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집중되어야 한다.

익숙한 동작 같지만, 매번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온다.

어제의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해도

오늘의 몸과 마음은 다르다.

그 다름을 느끼고 조율하는 것이 활쏘기의 본질이다.


훈련이 깊어질수록,

쏘는 한 발 한 발이 단순한 행위가 아닌 질문이 된다.

"나는 왜 지금 이 방향을 겨누는가?"

"내 마음은 과녁처럼 고요한가?"

몸의 균형이 무너질 때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화살은 그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마음이 흔들리면 활도 흔들린다.

손끝이 망설이면 화살도 흔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날아간 화살보다,

화살을 쏜 뒤 남겨진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고전에서 말하듯, “발이부중, 반구제기(發而不中 反求諸己)”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했다면,

바람 탓도, 활 탓도, 환경 탓도 하지 않는다.

내 자세, 내 시선, 내 호흡, 내 집중.

모든 원인은 결국 내 안에 있다.


그 깨달음은 활쏘기를 넘어

삶의 근본적인 태도를 다듬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남 탓부터 하지 않고

나의 부족함을 먼저 돌아보는 것.

그게 궁사의 자세이고, 사람다운 자세다.


화살은 결코 같은 길로 날아가지 않는다.

같은 활, 같은 자세, 같은 과녁을 향해 쐈다 해도

천 발의 화살은 천 가지 궤적을 그린다.

미세한 손의 긴장, 미처 감지하지 못한 바람,

순간 스친 마음의 요동 하나가

화살의 궤도를 바꿔 놓는다.


때로는 완벽했다고 느낀 순간에도

화살은 과녁을 비껴간다.

또 어떤 날은 집중이 흐트러졌는데도

화살은 정중앙에 꽂힌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늘 존재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겨누는 것.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궁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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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에서 화살을 쏘고

그 궤적을 따라가며 궁사는 깨닫는다.

“화살은 날아갔고, 남은 건 나뿐이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자세, 호흡, 마음가짐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 순간 세상은 점점 조용해진다.

날아간 화살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지만

그 화살을 통해 나는 다시 나를 조율한다.

과녁을 겨눈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겨누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건 맞췄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쐈는가,

그리고 쏜 뒤에 어떻게 나를 다듬는가이다.

오늘 쏜 한 발이 정확했는가를 돌아보며,

내일의 한 발을 준비한다.


그렇게 활쏘기의 시간은

결과를 향한 싸움이 아니라,

존재를 다듬는 수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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