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입학식 날,
같은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모였다.
유치원에서 함께 놀던 아이들이였다.
하지만 유치원에서도 보지 못했던 이상한 광경에 소녀는 의아했다.
아이들 대부분이 왼쪽 가슴에 거즈 손수건을 달고 있었다.
소녀는 엄마에게 물었다.
“저게 뭐야, 엄마?”
“엄마, 나만 왜 안 달아줘?”
입학식이라고 다들 멋진 재킷을 입고 왼쪽 가슴에는 옷핀으로 단 하얀 손수건을 달고 있었다.
괜히 소녀만 없는 것 같아 입을 쑥 내밀고 있었다.
그때 저만치에서 제과점 길 건너 금은방을 하던 당숙이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입이 삐죽 나온 조카를 보더니 번쩍 안아 올리며 말했다.
“아이구, 우리 예쁜 조카님을 누가 이렇게 입이 나오게 했나?”
이야기를 들은 당숙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조카는 이제 국민학교 1학년이니까 손수건 말고, 학교 끝나고 가게에 들르면 선물을 하나 주지.”
소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소녀는 가방을 메고 금은방으로 달려갔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반짝이는 시계와 반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당숙은 어린이 시계 코너를 가리키며
마음에 드는 시계를 골라보라고 했다.
소녀는 빨간 가죽 시곗줄이 달린 전자시계를 골랐다.
시계판에는 캔디 그림이 웃고 있었다.
소녀는 숨을 죽인 채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본 것 중 가장 예쁜 시계였다.
당숙은 소녀의 왼쪽 손목에 시계를 채워 주며 말했다.
“이제 우리 조카도 시간을 잘 지켜야지.”
마냥 언니가 된것마냥
얼마 동안 소녀는 손목에 찬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았다.
사실 시간보다도 빨간 가죽 시곗줄과 캔디 그림이 더 좋았다.
친구들에게도 몇 번이나 보여주었다.
“우리 당숙이 준 거야.”
어느 날 운동장에서
그네에 엎드려 빙글빙글 돌리며 타다가
균형을 잘못 잡으며 손목이 그네 기둥에 닿았다.
시계 유리가 깨졌다.
소녀는 깨진 시계를 한참 바라보다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삼촌에게 가서 고쳐 보라고 했다.
소녀는 금은방으로 갔다.
당숙이 고쳐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가게 안 공기는 어딘가 달랐다.
당숙은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웃어 주지도 않았다.
소녀는 괜히 민망해졌다.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아 놓고
얼마 안 되어 깨뜨려 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때문인건가....
소녀는 금은방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가스불로 금을 녹이고
가느다란 도구로 반지를 다듬는 모습, 눈에 까만 루페를 끼고 섬세한 작업을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것을 멋지게 다루는 당숙도 참 멋져 보였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가끔 그 가게에 들르곤 했다.
오늘의 냉랭함의 이유를 알기에는
소녀가 알아야 할 것이 아직 너무 많았다.
그저 위로하듯
이젠 알맞게 자리 잡은
또렷한 가죽 흔적에 맞춰
깨진 빨간 전자시계를
다시 감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