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엄마는 지금도
비가 오거나 날이 궂으면
오른팔이 아프다고 하신다.
80년대 초반, 탄광촌 마을에서
우리 집은 제과점을 했다.
엄마는
오른팔로 계란 흰자 한 판을 쳐서
이렇게 된 거라며 말씀하신다.
말 끝에는 늘 같은 문장이 따라왔다.
“너네 아빤 맨날 나가서 안 들어오고.”
그 시절 빵들은
단팥빵, 곰보빵, 도너츠, 카스테라처럼
지금 우리가 ‘옛날 빵’이라 부르는 것들이었지만
그때는 모두 ‘신식 빵’에 속했다.
그중에서도
카스테라는
내가 제일 좋아하던 빵이었다.
엄마 팔의 고통을 남긴
장본인이기도 했다.
카스테라는
일곱 살이던 내 키 높이의
유리 진열장 한가운데에
보란 듯이 놓여 있었다.
“좋겠다.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어서.”
친하지도 않았던 동네 아이들이
친구라며
괜히 우리 집에 들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빵집딸이라도 맘대로 먹을 수가 있겠냐.
카스테라.
내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빵이 아니었다.
제일 먼저 팔렸고, 무엇보다 비쌌다.
진열대에 놓여 있는 시간도 짧았고
남아 있으면
그건 손님 몫이었다.
지금의 나는 카스테라보다
극적인 달콤함인 단팥빵이 더 좋다.
내 딸은
카스테라를 제일 좋아한다.
왜냐고 물으면
부드러워서라고 한다.
부드러움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죽의 무두질처럼.
그 부드러움을 위해
누군가의 팔이
오래전부터 아파왔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지금의 나는
부러 빵을 찾진 않는다.
아마 빵집 딸이었던 영향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우리 집 주방에는
갖은 베이킹 도구들이
가득 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