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남자친구의(지금의 남편) 등을 바라보며 나는 약간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시크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비장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졌다.
“어쩌겠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는걸.”
세상에,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라도 않지. 아니 그렇다고 한들 일주일에 다섯 번을 치킨을 먹는 것이 말이 되냔 말이다.
지금은 배달료를 포함해 퍼런 세종대왕님의 초상 세 장은 있어야 한다지만 십 오 년 전에는 세종대왕님 한 분, 이황 선생 한 분이면 넉넉하게 먹던 것이 있었다. 바로 치킨이다. 하긴, 이 맛있는 것을 누가 마다할까. 아무리 나는 기름진 것은 질색이고, 튀김은 더 싫어. 라고 하는 사람이라도 한 조각쯤은 마다하지 않는 것. 바삭한 튀김옷에, 빡빡한 세로결을 따라 부드럽게 찢어지는 하얀 육 고기를 따라 입안 가득 퍼지는 기름진 맛의 향연. 어쩌다 저녁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다 배달하시는 기사님을 만나게 되면 그 잔향만으로도 남녀노소의 위장을 사정없이 흔들어 버리는 아주 요망진 그놈. 그래, 바로 그놈이다.
지금이야 치킨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치킨 프렌차이즈와 메뉴가 있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그런 치킨집은 몇 개 되지 않았었다. 시장에서 파는 치킨이나 멕시칸이나 페리카나에서 파는 후라이드와 양념치킨이 전부였던 그런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나마도 치킨집이란 어른들의 전유물로 동네 어른들이 저녁에 맥주를 마시는 곳으로 더 인상이 남아 있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때는 음식점 내에서 실내 흡연이 가능했었던 때로 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흡연 장소였으니 어린 자녀들이 함께 가기엔 조금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어린시절의 내가 치킨을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날이면 새벽부터 김밥이며 과일을 준비한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와 삼삼오오 모여 운동장 가장자리에 돗자리를 펴면 까치발을 뻗어 엄마에게 손을 흔들던 내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쪼르르 달려가 돗자리 한 편에 엉덩이를 붙이면 “얘, 손부터 씻어야지.” 하고 눈을 곱게 흘기면서도 엄마가 손에 들려주시던 따뜻한 닭다리와 월급날 얼큰하게 취하신 아버지가 우리 딸내미 줄 거라며 챙겨오신 양념치킨에 행복했던 날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치킨집이 흔해졌다고 한들 어디 치킨 한 조각이 주는 행복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엄마! 나 오늘 받아쓰기 몇 점이게?”
“몇 점인데?”
둘째 아들의 얼굴이 유달리 밝은 저녁, 짐짓 사정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묻는 내게 아들이 동그라미가 열 개가 그려진 받아쓰기 공책을 내민다.
세상에 부전자전이라 그런가 아니면 요만한 나이 때의 아이들이 그런 것인지, 세상 신난 표정으로 아빠의 어깨에 매달려 배달 어플로 치킨집을 찾아 고심하는 아들들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세상에 그리도 좋을까. 뭐 늦은 저녁에 먹는 기름진 음식이 건강에 썩 좋을 리 없지만 그래도 뭐 약속은 약속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게다가 오늘은 ‘불금’이니 이만한 일탈이야 귀엽게 봐주기로 하자. 그만큼 치킨은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