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실 사이 거머리 녀석

다시 뛰는 심장으로 02.

by 수상한 세 자매

"지금 오실 수 있는 어른이 있으신가요?"

스물 여섯살, 내가 어른 아닌가?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어른처럼 웃었다.

길고 긴 건강 검진 결과 모든 부분이 건강하나, 단, 심장에서 잡음이 들린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심장 잡음 소리는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건강한 어른에게 잡음은 안 좋은 징조라시며 심장 초음파를 권하셨다. 심장 초음파를 할 수 있는 가까운 병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주시며 즉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아이들이 가득 가득한 소아과(그 지역에서 잘 보기로 유명한 병원이었다는^^)의 낡은 침대에 누워 의사 선생님과 함께 태어나 처음으로 나의 심장을 보았다. 의사 선생님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시네. 여러 번 초음파 기계를 옮기시면서 20분이면 끝난다는 초음파를 한 시간이 넘게 관찰하고 또 관찰하셨다. 그리고 할 말을 고르시는 듯 긴 침묵 끝에.


"음. 혹시 심장에는 암이 없다는 말 들어봤나요? 요 녀석이 쉬지 않고 뛰어서 그런지 이 기관에 종양이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자, 여기 장면을 보세요. 얇은 막 보이죠? 이게 심실 사이에 있는 막인데, 여기.. '거머리'가 보이네요."


'거머리'라는 말에 픽 웃었다.

어렸을 때 벼농사를 지었는데, 피를 뽑다 나오면 거머리가 자기 뱃고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하지 못하고 피를 빨아 먹다가 제 풀에 지쳐서 벌개져 툭 떨어지는 장면이 떠올라서였다. 부모님께서는 거머리를 중간에 떼어 내면 살점까지 떨어지는 법이라고, 양껏 먹도록 두고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답이라 하셨다. 그 지독한 식탐의 거머리가 내 심장에 살고 있다는 말인가?


"거머리라고 표현한 건 모양 때문이에요. 보통 양성의 경우 병변의 모양이 동그래서 떼내기가 용이한 편이에요. 그런데 환자분의 병변은.... 네... 거머리처럼 길고 아주 딱 붙어 있네요. 모양이나 성격으로 보아 악성 종양이 의심됩니다."


악성종양.

그러니까 나의 심장에 암이 생겼다는 그런 의미였다.

건강검진부터 암 진단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오전 나절이었다.


"엄마, 바빠?"

"잉, 뭔 일이냐?"

"엄마, 내 심장에 종양이 있다네."

"괜차네. 요즘 얼마나 기술이 발전했는디? 혹이 있으면 톡 떼어블면 되지."


맞네.

그냥 톡 떼어버리면 되네.

스물 여섯, 봄.

나는 그렇게 내 심장 안의 거머리와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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