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없다.

다시 뛰는 심장으로 04

by 수상한 세 자매

입원을 서두르자 하신다. 초음파 때 느낄 수 없었던 급박감이 느껴진다. 이제서야 거머리가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8월의 뜨거움 속에 입원을 하고 나면 가을바람이 불 때쯤 아무 일도 없이 일상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입원 검사와 CT 촬영, 일상적으로 맞는 수액을 제외하고는 검사도, 약도, 처지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CT 촬영을 하기 전 두꺼운 바늘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쇼크가 제대로 와서 의료진들 출동하고 난리가 나는 일도 있었지. 엄청난 상황에서 눈물도 흘리지 않고 걱정도 하지 않고 그저 무력하게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새 새끼같은 작은 몸이 죽음을 거부하고 있었나 보다.


쇼크가 오는 순간 바늘을 뽑아서 집어 던지고 바로 기절을 해버렸다고 한다. 기절을 하는 순간 나는 적당히 싸늘한 바람이 부는 초원 가운데 서 있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 가는 순간은 살갗에 닿는 바람으로 바로 느껴지는데, 얼마 안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순간이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순간 학생들의 '선생님, 선생님, 일어나세요.'하는 커다란 음성이 들렸고, 아이들 다시 만나러 가자 약속했지 하며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눈을 뜨고 보니 바늘을 꽂을 때 거부하면서 뽑아 던져 버렸고 그 순간 피가 터지면서 시트가 엉망이었다. 내가 학생들의 목소리라고 착각했던 소리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급히 응급콜을 부르고, 의사 선생님들께서 응급콜을 서로 부르고 했던 순간이었다. 의식을 찾게 하려고 나를 부르면서 정신 차리라고 했던 목소리가 내 귀에는 학생들의 음성으로 들렸던 것이다.


눈을 감을 때 그런 온도와 습도, 서늘한 바람, 화려하지는 않지만 연두색의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진다면 생을 끝낸다는 게 그렇게 아프고 힘든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스치고 지나갔던 것 같다. 그 경험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순간에 나를 살게 한 힘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회진은 매일 아침 계속되었다. 매일처럼 반복되던 그 문장.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대체 이 거머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렇게 하루 이틀 물음표가 쌓여갈 때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1. 종양의 모양과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악성 종양일 가능성이 높다.

2.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데 위치가 좋지 않다.

3. 조직 검사를 위해 심장을 여는 순간 심장은 기능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4. 이에, 지금 심장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5. 의심할 만한 정체는 있으나 국내에서 2명의 사례 모두 사망이다.

6. 항암도 듣지 않는 녀석인데다 심장 내에 있어 작용이 힘들다.

7.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3주간의 입원 끝에 겨우 들은 결론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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