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휴가에 들어가다

다시 뛰는 심장으로 03

by 수상한 세 자매

당시 심장으로 가장 유명한 분은 서울아산병원의 송명근 선생님이셨다. 유명세에 맞게 외래 예약을 잡는 것만으로도 하늘의 별따기! (별을 따보지 않았지만 정말로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지인 찬스며, 전문가 찬스 따위 통하지 않았고.. 혹여 취소되는 예약 자리가 있지는 않을까 운에 기대어 연락을 해보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어 가장 가까운 일자로 예약을 잡으며 병원 투어를 하려면 학교를 쉬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힘들었지만 사랑하는 일이었다. 일생에 한 번쯤은 만나는 복이 온다는 인생반인 2학년 3반을 만나며 백일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짧은 머리에 순수한 눈빛을 가진 나의 소중한 제자들은 눈물이 가득한 눈을 애써 피하며 나의 마지막을 배웅해 주었다. 필요한 경우 휴가를 내며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다고 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지금 쉬지 못하면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됩니다.'는 말로 인연을 끊어내셨다.


처음 이상을 발견해 주신 의사 선생님은 참으로 따뜻하고 좋으신 분이었다. 내과 의사와 달리 거친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의 경우 표현이 직설적이어서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며 정신 무장을 해주시고는 하셨다.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에 여러 병원을 찾아 진료를 본들 아마 결론은 같을 거라고 하셨다. 그 결론은 차마 말씀하지 못하셨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을.


운이 좋게 잡은 예약 취소날까지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무색하게 진료는 짧았다.


"일단 초음파를 한 번 더 봅시다."


초음파를 긴급으로 잡는데도 한 달의 시간을 기다렸다. 촌각을 다투는 위험한 상황이라면 바로 예약을 잡아 주셨을텐데 그게 아닌 걸 보니 별 일 아니지 않겠냐며 마음을 다스리고 다스리며 병원 가는 날을 기다렸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초음파 검사를 하였지만, 초음파실 교수님께서 직접 검사를 해주시는 것도 처음이었고, 교수님 뿐만 아니라 다른 의사들까지 많이들 모여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도 처음이었고, 전문 용어들 사이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캔서, 블러드' 뿐이구나 무력감이 느껴졌던 것도 처음이었다.


바로 잡힌 입원일.

그렇게 거머리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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