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차 신앙 일기 Day2

하루를 봉헌하며 주님께 드리고 싶은 것

by 박 윤여재

<질문>


하루를 봉헌하며 주님께 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떤 하루를 봉헌하고 싶을까? 묵상하며 예수님의 질문을 떠올린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마르코, 27)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마르코, 29)


‘사람들은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면 더 가까운 이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렇다면 신앙인으로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전에 신부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이 있다.

‘나는 신자로서 살아가면서 받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피하려고

또 행복해지려고 종교를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행복은 와인 한 병으로 얻을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이 참으로 안락함을 느끼기 위해

종교를 원한다면

나는 결코 그리스도교를 권하지 않겠다.’

- C.S 루이스


고통 중에 헤매며 원망이 앞설 때

그 힘듦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해 전해주신 말씀이었다.

늘 기도의 중심에 내가 있고,

건강과 행복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내 기도의 중심이었을 때,

그리고 결과가 좋지 않아 불만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을 때

신부님께서 보내주신 이 글은 큰 울림을 주었다.

그동안 내가 원한 것은

'단지 와인 한 병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을 뿐.

내 기도가 깊어질수록 그 결과가 좋을수록

점점 내 개인의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

그리고 이에 대한 감사의 기도만이 깊어졌다.

신앙은 단지 마음의 평화를 얻고

감사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신앙인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는 것이라 하셨다.


창세기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느님의 선택’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가 된 것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선택해주신 일이다.

다만, 선택된 누군가가 대단한 인물이어서

그를 엘리트로 만들어 특별대우를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복의 통로'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복을 전하기 위함이라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고통의 연속인 삶이라고.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등

모두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기에.


평신도로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일까'에

대한 혼돈과 고민이 있었다.

아직도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채 ing 중이다.

교수 신부님조차

모든 것을 양보하고, 그저 착하게만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라 하셨다.

취업도 잘하고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 또한

열심히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답과 신앙인으로서 선택해야 하는 답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나고 보니 이는 평신도로서의 어려움이 아니라

빈약한 내 신앙의 혼돈이었을 뿐이다.


이 혼돈이 깊었던 때,

니체의 '르상티망'에 관해

심각히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에서

포도를 포기한 여우를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리고 대표적인 예로 기독교를 들었다.

로마의 지배 아래에 빈곤과 고통에 허덕이던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을 선망하면서도 증오했고,

이를 부자와 권력자들은 신에게 미움받고 있어 천국에 갈 수 없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개념을 내세워

노력과 도전으로 해소하려 하지 않고

강한 타자를 부정하는 가치관을 끌어내 자신을 긍정하려 한 사고관이라

주장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이, 그로 인한 실패가

신앙인으로서 적절했는지

아님 내 노력의 부족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아닌지

늘 그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갈등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께서 가신 길, 우리가 따라야 할 그 길은

단순한 르상티망을 넘어

더 숭고한 의식에 뿌리를 두고 계신 것임을 배운다.

다만, 그 길에서 선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할 뿐이라는 것 또한 실감한다.

니체는 아마, 그다음 단계를 넘지 못한 채

예수님을 향한 원망을 던진 것이 아닐까

그리고 저 위대한 니체에 한참 부족한 우리 또한

변명의 구실로 그의 말을 맹신하며 내세운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제 나는 기도를 통해 나의 하루를 봉헌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는

신앙인이 되길 간청하며


매번 복의 대상이 되길 간절히 바랬지만

이젠 그 '복의 통로'가 될 수 있어야 함을 배운다.

오늘 내겐 주어진 힘듦과 고통은

예수님께서 짊어지고 가주신 십자가 중

눈에 띄지조차 않는 아주 작은 일부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지고 가야 함을 배운다.

그 감사함이 안주와 패배의식이 아니라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도전임을

새기고 싶다.

그렇게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눈을 뜨고

그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갈 마음을 주시길

기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2주차 신앙 일기 Day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