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람들의 평가는 때로는 내가 모르던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신앙인인가요?
첫날 '나는 누구인가요?'에 이어 오늘 질문을 보며 자기소개에 관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전에 고등학교에 수업을 나갔을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으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대부분 ‘저는 ~이고 ~한 사람입니다.'
라고 간단히 넘어가는 가운데 한 학생이,
‘저는 우리 엄마 아빠 아들이고, 내 동생 형이고, 우리 할머니의 귀한 장손입니다. 엄마가 혼내실 때 저는 세상 게으른 성격이지만 할머니는 세상에서 제가 제일 착하다고 하십니다. 게으른 것도 착한 것도 모두 저입니다.‘
하고 상세히 자신을 소개했다.
정말 우문에 대한 현답이었다.
그때 이후로 수업 때 사용하는 자기소개 문구를 수정했 다.
‘당신을 (최소) 역할 5가지와 성향 5가지로 소개하세요.'라고.
간단히는 별자리, 혈액형부터
mbti, 에니어그램 사주팔자까지.
수억 명 지구별 사람들을 통계적 숫자로 분류한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화한 이 결과물에
우리는 열광하고 때로 맹신한다.
평생을 살아도 알기 어려운
한 사람의 복잡하고 섬세한 성향을
나와 전혀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성향을 기반으로 평가한 이것이 도대체 뭐길래.
통계의 분류와 숫자는
마법 같은 매력이 넘치는 것임에 틀림없다.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파악이 안 된 부부와
자식의 성격을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이면 뚝딱, 줄줄 말해주니 말이다. 이토록 명쾌한 정리가 어디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관계에 지치고 시달린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이러니 이럴 땐 이렇게 하시고,
저 사람은 저러니 저럴 땐 저렇게 하세요.’
라는 기막힌 솔루션을 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 소통법인가?
오랜 시간 끙끙거리며 힘들게 참고 견디다
겨우 알만하다 싶으면 다시 돌변하는
누군가의 성질머리, 이런 돌발 상황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 검사의 결과지를
관계의 정석처럼 외우고 싶어 질 것이다.
고민하는 괴로움의 과정을
한방에 결론부터 말해주고, 매뉴얼대로 파악하고 솔루션대로 행하며 여기에 없는 것은
예외로 여기라고 설명해주니,
이는 결국 일주일이 걸릴 시험공부를
똑똑한 친구가 하루 만에 요점정리와 설명까지 끝내주는 것과 매한가지니 신통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할 방법은 자명하다. 쉽고 빠른 길이다. 이 길을 두고 왜 굳이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그렇게 숫자 몇 개와 유형 몇 가지로 분류될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난 당신의 변화무쌍하고 예측불허 한 그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이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 실망한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예측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럼 예측은 어떻게 할까?
오랜 시간 그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한
객관적 자료가 있는 걸까? 아니다.
지극히 나 중심적 사고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며 그 사람의 백가지 성향 중 몇 가지를 골라
내 마음대로 단순화하고 극대화한 것이다.
나의 객관성을 과연 내가 믿을 수 있을까?
이 얼마나 위험한 작업인가?
내 맘대로 설정한 기준으로 내 맘대로 실망하고 비난받고 미움받는 상대방은 얼마나 억울한가?
결국 우리는 누군가에 대한 규정짓기 작업을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독자적인 실체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존재하는 상대적 존재로서 나를 볼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좀 더 자유로워지며, 더 깊게 성찰할 수 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나의 긍정적 부분을 떠올리며
근거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함께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서로가 서로를 품을 때 우리는 더 아름답고 견고해진다.
혼자가 아닌 공동체 안에서 함께 관계 맺고 어우러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나의 삶 속으로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려 하지 않고 그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울 때
우리는 참 신앙인이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젊은이들과 함께 한
교회 일치와 종교 간의 대화에서 말씀하셨다. “꿈을 꾸게 하는, 우리 삶을 멋진 모험이 되게 하는 아름다운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아무도 혼자서는 삶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함께 꿈꾼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모든 이가 형제자매로서
우리 함께 꿈꿉시다!”
신앙 안에서 나는
교회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애를 쓴다.
때로는 그 길이 아주 자연스럽지만
때로는 아주 불편함을 무릅쓴다.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애쓰는 모습 그대로
나를 보고 생각할 것이다.
이 또한 내 일부이며 언젠가는 자연스러운 순간이 올 거라 믿는다.
신앙 밖 공간에서도 그러고자 노력한다.
이때의 이런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주님 안에서는 이 모습이 전부인 나로 머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