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누군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면
더 수월하게 갈 수 있습니다.
나는 신앙인으로서 누구를 존경하며
무엇을 닮고 싶은가요?
1. 성경공부에서 만난 신부님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어느 정도에 이르면, 언제쯤 이면
진리 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어느 신부님의
성경공부 영상강의를 처음 알게 되었고,
모든 과정을 끝낸 후에도
반복적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한 강의 당 1시간 정도 되는
40개가 넘는 강의를 끝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듣고 또 들어도 매 번 새로웠다.
같은 강의를 들을 때 내 상황과 생각에 따라
매번 다른 울림과 감동을 주셨다.
지루했던 출퇴근 시간이 즐거움과 설렘으로
바뀜을 느낄 정도였다.
성경공부를 할 때마다 느꼈던
교과서 적인 설명의 반복과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는
강요적 정당성과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던
궁금증과 목마름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첫 시간에 성서에 관해 비교적 긴 호흡으로
천천히 공부할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에 관해 지성적으로 접근하는 신학적 접근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셨다.
그리고 신학공부를 하면서 믿음이 튼실해지기보다는
단순하고 컸던 믿음이 오히려 의심하고
신앙이 흔들리는 경험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단단한 신앙을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당부하셨다.
아니면 오히려 신앙을 잃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신부님의 말씀이 정답이라 생각하지 말고
계속해서 모두에게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라 하셨다.
신부님 성경공부를
나 또한 오랜 시간 긴 호흡으로
함께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 안에 신부님의
학문적 깊이와 신앙적 영성이
깊고 경직되지 않게
유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신부님처럼 그 학문적 배경을 담아
깊이 있는 성찰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길
진심으로 희망하며
열심히 중단 없이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
2. 삶 속에서 만난 아버님
신앙 일기를 쓰며 몇 번이나
아버님 얘기를 계속하게 된다.
시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모시고 살았다.
돌아가신 지 7년이 지났음에도
아버님이 ‘요셉피나’하고 부르시는
따뜻한 목소리가 생생하다.
시댁은 7남매인데
그 배우자와 손자녀 모두 신자이다.
매번 가족모임도 아버님의 기도와 함께 시작하며
우리는 모두 세례명을 부른다.
당연한 줄 알았던 우리의 작은 일상의
사람들은 신기하고 기적 같은 일이라 했다.
지난 글에서처럼 아버님의 장례미사는
내가 드렸던 가장 아름다운 미사 중 하나였다.
그렇게 아버님은 살아계시는 동안은 물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가족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을 듬뿍 전해주시고 가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방 정리를 하다
아버님께서 손수 꼭꼭 눌러가며 쓰신
성경필사 노트 3권을 발견했다.
한 번 읽기도 힘든 성경을 3번이나 쓰신
아버님의 신앙이 고스란히 전해져
감동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하지 말고,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기도하고,
단식할 때 위선자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말고,
자식을 위해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마태오복음 6장의 말씀처럼
이렇게 모든 신앙을 삶 속에서 그대로 실천하고
우리에게 남겨주신 분이셨다.
그렇기에 나도 아버님처럼
생각하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애쓰고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