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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

너는 네 삶을 얼마나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by bluemind


"너는 네 삶을 얼마나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언제부턴가 한참을 달려왔다. 맡은 일을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다. 하루가 저물어도 속도는 줄지 않았고, 내 일상은 늘 분주했다. 멈추는 법을 모른 채 내달리던 그 시간들. 어쩌면 평범하기만 했던 내 삶에 균열이 생긴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병원에 다니며, 나의 증상과 아픔을 마주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부단히 걸었던 지난날들이 이렇게 부질없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무언가를 멈춘다는 건 낯설고도 불안하다. 내 삶은 줄곧 하얀 깃발을 향한 끝없는 달리기였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 인정받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달려왔던 시간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을까? 내 안의 검은 것들이 끓어올랐다가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고개를 들어 창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검은 조각들로 물든 우물에 다시 투명한 빛을 되찾고자 물을 끼얹는 일처럼.

늦은 밤, 창은 늘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주말에 나를 깨우기라도 하면 인상을 찌푸리기에 바빳다. 서로 눈길을 피하는 데 익숙한 우리 사이가 어쩐지 조금 어색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나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서두를 것 없이 제 몫의 시간을 사는 듯했다. 모퉁이에서 일렁이는 초록빛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상하리만치 오래 머문다. 나무는 바람에 나긋이 흔들리며 한껏 가벼움을 뽐낸다. 창밖의 계절이 시간마다 옷을 바꿔 입어도, 군소리 없이 자신을 내어준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자존심도 없는 놈.

벗으라면 잎을 떨구고야 마는, 끈기 없는 한심한 놈.


욕이라도 퍼부으면 속이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개운치가 않다.

다시 고개를 들어 말해본다. 부러운 놈.


쉼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을. 사람은 나무처럼 주기적으로 비워내야만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이 이제야 가슴에 와닿는다. 파란 하늘은 내 막연한 욕지거리를 묵묵히 받아주고, 나무의 고요한 흔들림은 "천천히 가도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창은 결국 멈춤을 통해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여전히 바깥세상은 분주하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다. 그래도 천천히 걸어가는 연습을 시작했다.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수화기 너머 닦달하는 목소리도 적당히 흘려낸다. 내 속도의 삶을 살아보려 애쓰는 중이다.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하늘은 그저 고요히 빛을 내뿜고 있다. 여전히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계절이 바뀌면 잎을 떨굴 뿐이다. 서두르지도, 버티려 애쓰지도 않는다. 꾸밈도 없고, 과장도 없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묘한 평온함이 전해진다. 그게 참 낯설지만 따뜻하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가까이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가끔 고개를 들면 그렇다.


그런 쉼이 주는 힘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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