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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찾은 쉼표

by blue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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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설렜다.

올해는 개천절과 한글날이

이어져 무려 칠 일이었다.


십 월 삼 일부터 구 일까지.


길면서도 짧을 시간.

짐을 꾸리며 생각했다.

고향에 가면 무얼 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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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겨주는 마음들


고속도로를 달려

익숙한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공기부터 달랐다.


창문을 열자 바다 냄새가

차 안 가득 퍼졌다.

"왔어!"

대문을 열기도 전에

엄마가 달려 나왔다.


목소리에 기쁨이 가득했다.


도시에서 꽁꽁 얼어붙었던

감정들이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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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밥상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생선, 전, 나물, 탕국.


하나하나 정성스런 그릇들.

"많이 먹어라."

엄마는 연신 내 밥그릇에 반찬을 담았다.


회사 생활에 지쳐

끼니를 대충 때웠는데

집밥 한 숟가락에

그간의 허기가 채워졌다.


매일 새로운 요리가 나왔다.

그렇게 매일 세 끼를

알차게 챙겨 먹으며

무너졌던 기력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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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주는 위로


집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

작은 해변이 있었다.

아침이면 혼자 산책을 나갔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부드러움이

마음까지 어루만졌다.


파도 소리가 규칙적으로

밀려왔다 물러갔다를

반복했다.


그 리듬에 맞춰 걷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서서히 비워지는 기분.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광활한 풍경 앞에서

내 고민이 얼마나 작은지

새삼 깨달았다.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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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채운 기운


연휴는 칠 일이라는

긴 시간이었지만

막상 보내고 나니

너무 짧게 느껴졌다.


매일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바다를 거닐며

부모님과 도란도란 대화했다.


특별한 일정 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조금씩 벗겨져 나갔다.


돌아갈 날이 되자

짐을 챙기는 손이 무거웠다.


"건강 챙기면서 일해."

손에 든 반찬통들은

집으로 가는 길의 무게였지만

동시에 힘이 되어주는

따뜻한 응원이기도 했다.


차를 타고 떠나며

백미러로 손 흔드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다.


가슴 한켠이 먹먹했지만

이번 연휴 덕분에 다시 일어설 기운을

충분히 얻었다.


명절 연휴가 주는

진짜 의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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