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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mind Aug 10. 2022

사천선

“야, 빨리 와 좀 있으면 열차 온단 말이야.” 추억은 서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이 사라진 것처럼 끊긴 채 기억된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은 그 자체로 나에게 위로가 된다.    

 

나는 진주 근교의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줄곧 한 반의 친구들과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늘 가는 곳은 학교 근처 '사천선'이었다. 학교와 가깝고 버스도 몇 대 다니지 않아, 나와 친구들은 사천선을 통해 걸어 다녔다. 거리 구경도 하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군것질도 하고, 한눈도 약간 팔면서. 어머니는 우리의 ‘한눈’이 늘 걱정이었다. “기찻길에 가면 안 된다. 꼭 큰길로 다녀야 해.” 큰 소리로 “네” 대답해 놓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우리에겐 얌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즉석에서 이런저런 시합을 고안해 내었고 다짜고짜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팔을 벌리고 발끝으로 레일을 더듬어 누가 멀리 가는지 겨루는 허수아비 시합, 침목을 더 많이 건너뛰는 사람이 이기는 멀리뛰기 시합 등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건, 선로 옆 잔디밭에서 가방을 훌렁 벗어 던지고 모두가 빠져들었던 축구시합이었다. 우리는 맨땅 운동장에서 할 수 없었던 오버헤드킥, 발리킥 등을 흉내 내며 푸른 잔디 위로 몸을 내던졌다.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물들어 갔다.     


댕 댕 댕, 토요일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기찻길 건널목 경보기가 울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언덕 너머로 열차가 고개를 내민다. 뿌우~, 기적을 뿌리며 달려오는 기차가 왜 그렇게 신기했는지. 덜컹거리는 기차의 굉음과 맹렬한 바람이 머리 위로 불어 닥치는 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당시 드라마 ‘왕초’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거기서 춘삼이라는 등장인물과 발가락이라는 인물이 거지의 왕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였다. 열차가 통과할 때까지 선로 위에 누워있는 담력 싸움을 벌인 것이다. 발가락은 무서움에 못 이겨 먼저 도망치고, 누워있던 춘삼이의 비명과 함께 눈앞으로 열차가 번개처럼 통과한다.      


비슷한 장면, 비슷한 무대에서 하지 말아야 할 상상도 많이 했다. 눈앞으로 열차가 지나가면 어떤 느낌일까. 레일 노면 위에 동전을 올려두면 납작한 딱지가 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비슷했다. “큰일이 나니 절대로 열차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를 ‘그곳’으로 보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사천선은 최고의 놀이터일 뿐이었다.


친구와 함께 몰래 기찻길로 다가가 작은 콩자갈을 레일 위에 올려놓고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덜컹덜컹” 묵직한 소리와 함께 콩자갈은 흔적도 없이 바스러졌다. 행여 기관사가 기차를 세워놓고 나를 잡으러 올까 봐 숨어서 보곤 했다. 어딘가에서 상황을 지켜본 누군가가 소리칠 땐 우리는 비명을 내지르며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다. 달리는 내내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챌 것 같아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팔다리는 풀잎에 베인 생채기로 가득했다. 사천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서로의 몰골을 보며 깔깔깔 웃어댔다.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달려오는 기차가 마냥 신기하고 좋았다.    

 

사천선을 따라 걷다 보면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이 나타난다. 죽봉터널이다. 죽봉터널은 1965년 개통하여 진주-사천간 여객을 실어 나르던 철도구간이었다. 1970년대 내내 만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사색이 짙어졌다. 기적소리가 잊힌 지 오랜 터널 안은 조명하나 설치가 안 되어있다. 꺾어 돌아가는 터널의 초입은 마치 어둠에 빨려들 것 같은 스산한 기운이 맴돈다.      


우리에게 죽봉터널은 도깨비가 사는 동굴이자 미지의 세계였다. 한 날은 친구들과 집에서 챙겨 온 손전등으로 무장한 채 터널 탐험을 계획했다. 눅눅한 바닥과 벽면은 초록의 이끼가 가득했다. 조금 더 깊숙이 걸음을 옮기자 무리 지어 숨어있는 박쥐가 눈에 들어왔다. 가뜩이나 어두운 터널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뒤를 비추던 불빛도 사라지고 우리는 오롯이 손전등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툭” 한껏 예민해진 우리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투툭” 어둠 속에서 다시 들려온 인기척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깨비다” 비명을 지르며 빛을 향해 도망쳤다. 얼마를 달렸을까. “야들아, 다친다. 뛰지 마라.” 터널 밖에서 마주친 동네 아주머니께 도깨비를 보고 놀란 이야기를 자랑스레 떠들어댔다. “아이고, 저 건너편에 어르신들이 더 놀란다.” 텃밭에서 일하시는 마을 어르신들이 시원한 터널 안에서 종종 땀을 식히니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터널 안에 살던 도깨비의 정체는 어르신이었을까. 깜깜한 터널 속 도깨비는 여전히 소년의 가슴 속에서 외롭게 떠돌고 있다.     


주말이면 강주연못을 몇 바퀴 돌다 그 옆에 놓인 사천선에 눈길을 둔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바뀌었다. 어린 소년이 뛰고 뒹굴던 잔디밭은 카페와 주차장으로 탈바꿈했고, 선로 위에서 들리던 아이의 순수한 외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차를 타고 사천선 옆을 지나가는 길이었다. 잠시 죽봉마을 변두리에 자리한 정자에 차를 대고 선로를 걸었다. 발목까지 오던 들풀은 제초가 잘되어 말끔하고 죽봉터널 입구 쪽에 있던 낙서도 흔적 없이 지워졌다. 썩어 있던 목침목과 그 위에 위태롭게 박혀있던 엉성한 쇠못은 단단한 콘크리트침목으로 바뀌어 코일스프링으로 강하게 체결됐다.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쓸쓸하다.      


지금도 집에 돌아와 철길을 지날 때면 가끔 사천선을 걷곤 한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도 사천선도 많은 것이 변했지만 이곳을 걷다 보면 가슴 속 그리운 풍경이 그려진다. 아침 해가 걸리면 강주건널목 점멸등이 붉은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경고음이 울리고 차단기가 내려온다. 열차가 코앞이라는 신호다. 곧이어 들리는 열차의 기적소리는 소년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물고 왔다가 다시 희미하게 사라진다. 레일 위에 내려앉은 검붉은 녹처럼 우리의 젊음도 레일 위에 쌓여간다.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간직한 채, 사천선은 쓸쓸한 모습으로 나에게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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