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드라마 시리즈물이 많이 방영됐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9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행님~ 말 노이소~ 지 스무살입니더!” 하숙집 식구들이 극존칭을 하게 만들었고, 미팅에서 상대 여학생들이 선생님으로 착각할 정도의 최강 노안. 그러나 외모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섬세한 완벽주의자. 응답하라 1994의 주역 ‘삼천포’가 등장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여자친구를 향한 순박한 모습과 경상도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는 삼천포의 매력을 어필하기에 충분했고, 삼천포의 실제 위치와 지명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지기도 했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
하지만 삼천포는 그전부터 우리의 일상 속에 익숙한 지명이었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 이 표현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거나 말로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화 중에 하려던 이야기가 뜬금없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다.
오늘날 삼천포는 1995년 사천군과 통합되어 지금은 사천시에 있는 항구를 말하는 곳이 되었지만, 그전에는 ‘삼천포’라는 도시가 따로 있었다. 그리고 이제 추억으로 남은 *진삼선(진주~삼천포) 위로 삼천포행 여객열차가 내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부산을 출발한 진주행 열차는 *경전선 개양역에서 진주행과 삼천포행 객차를 분리하여 운행하였다. 이때 안내방송을 통해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이 각각 몇 호차로 갈아탈 것인지 알려주었다. 그런데 진주로 가는 손님이 술을 과하게 마시거나, 깜빡 잠이 들면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빠졌다. ‘삼천포로 빠진다.’ 이 관용적 표현의 어원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설이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삼천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표현을 가장 싫어하는 말로 꼽는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의 지명이 좋은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이왕이면 잘 나가다 샛길로 빠진다고 말하는 것도 낫지 않을까.
진삼선은 도로교통에 비해 상대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1970년대 내내 만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중간역을 하나둘씩 잃어가며 점차 사색이 짙어졌다. 기적 소리가 잊힌 지 오랜 지금, 옛 삼천포역이 있던 자리는 시내 중심가에서 동떨어진 도시의 뒷마당이 되어버렸다. 주변의 도로는 넓고 인적은 많지 않다. 상선 역시 삼천포항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 그 옛날 삼천포역의 저녁나절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1970년대 당시 운전시각표를 보면 당시 진주~삼천포 사이를 운행하던 열차는 하루에 딱 한 번 왕복할 뿐이었다. 여객열차는 아침에 삼천포에서 진주로, 저녁에 진주에서 삼천포로 향했다. 어둑한 밤, 아차 하는 사이 삼천포로 빠져 종착역 어스름한 거리를 배회할 상상을 하니 웃음이 나오면서도 아찔하다. 그러나 이미 삼천포로 빠져버린 것을 어찌하리. 이른 아침, 네 칸짜리 동차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산을 끼고 강을 건너 돌아오는 길은 꽤나 경쾌했을 것 같다.
* 경전선 : 남부지방을 운행하던 열차 노선 중, 경상남도 상람진에서 진주, 순천을 거쳐 광주까지 연결되는 선로
* 진삼선 : 일제강점기에 건설을 시작한 진주~삼천포간 노반을 보강해 해방 이후 개통한 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