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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mind May 19. 2021

홍시

 한류를 이끌었던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이의 깜찍한 연기가 생각난다. 수라간에서 최고 상궁인 정 상궁이 꼬마들한테 음식에 들어간 재료를 맞춰보라고 했다. 절대 미각을 가진 장금이는 그 달콤함의 비결을 '홍시'라고 맞춰버린다. 정 상궁이 왜 홍시 같냐고 물으니, 장금이는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대답했는데 어찌 홍시 맛이냐고 하시면"하고 우문현답을 날려버린다.


 어린 시절, 나뭇잎이 노릇해질 때면 나는 달콤한 홍시를 매일 하나씩 먹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취미 삼아, 소일거리로 감나무를 기르셨기 때문이다. 전문 농사꾼은 아니지만 감 농사를 하시는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매년 감은 잘 열렸던 것 같다. 이렇게 소중하게 익은 홍시를 어머니께서 타지에 있는 나에게 택배로 보내주셨다.


 물론, 어머니는 나를 위해 홍시 외에도 각종 먹을거리를 자주 보내주셨지만, 홍시가 더 특별하게 보이는 이유는 가수 나훈아의 노래 덕분일 것이다. 집에 있을 때면 아버지 방에서는 항상 옛 가요와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언제인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때 나훈아의 '홍시'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노랫말 중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중략)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라는 가사가 있다. 얼마 전에 어머니가 냉장고에 얼려두신 홍시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불현듯 이 노랫말이 떠올랐다.


 나는 영화감독 이창동의 영화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을 좋아한다.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 출신이라 그런지 문학적인 상징을 자주 영화에 둔다. '초록물고기'는 군 전역 후 더러운 세상에 물든 막동이가 그리워한 어린 시절의 상징이고, '박하사탕'은 점점 순수함을 잃어가는 설경구의 순수했던 젊은 시절의 상징이다. 이런 상징처럼 요즘 나에게 홍시는 부모님의 사랑이다. 웃긴 이야기지만 난 예전에 홍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권해도 잘 먹지 않았다. 감보다는 더 자극적인 키위나 포도를 좋아했다. 지금은 그 달콤함을 알게 된 것이 단순히 입맛의 변화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타지에서 자취 생활하며 부모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데 나와 동생을 어떻게 키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철이 드는 게 싫은데, 어른들이 말하는 그 철이 조금 들었나 보다.

 

 부모의 존재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부모님의 은혜’하면 떠오르는 상징이 있다. 그 상징은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그것이 나타내는 부모님의 사랑은 과거부터 현재, 미래에도 변함없는 모습일 것이다. 그건 자식을 위한 헌신과 희생, 무조건적인 사랑, 그리고 따뜻함이 아닐까? 냉장고에 얼려둔 홍시를 다 먹어 그것이 없어져도 부모님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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