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도움될만한 소소한 팁
고등학교를 졸업한지가 언제인지 나도 모르게 세월이 훅 지났다. 옛날 생각도 할 겸 고1 시절에 영어로 문학 분석 에세이를 쓸 때 염두에 두었던 영어 선생님의 팁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형편없고 쓸모없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나마 요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전혀 없고 그저 소소한 팁으로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에덴의 동쪽>이라는 소설을 읽고 에세이를 쓴 전적이 있으니 이 책을 예로 들겠다. 그럼 영어 에세이 8가지 팁, 시작해 보겠다.
1. 제목
한글, 영어, 독일어, 불어, 그 어떤 언어로 에세이를 쓰든 간에 제목이 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에세이를 다 쓰고 제목을 짓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제목을 먼저 지었었다. 뭔가 이제부터 시작이다 라는 느낌을 주었달까. 간단하게 기본적인 제목의 5가지 종류를 나열하자면 이렇다:
a. 두운법/Alliteration
예를 들자면 "The Proud People's Purpose," 제목을 구성하는 단어들이 모두 같은 P자로 시작한다. 또 무조건 P자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앞 글자 소리가 같은 단어들이다 (Physical과 People, 같은 P자로 시작하지만 앞자 소리가 다르다). 두운법은 제목으로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도 충분히 쉽고 무난하게 쓸 수 있다.
b. 유머 & 아이러니/Humor & Irony
예를 들자면 <The Count of Monte Cristo>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제목을 패러디해서 "The Count of Monte Pages"라고 제목을 지을 수도 있겠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예보다 훨씬 재치 있는 제목을 지을 수 있다면 추천하고픈 방법이다. 이미 느꼈다시피 나는 개인적으로 그 정도 유머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못 된다. 반면 아이러니한 제목의 예를 들자면 "When Sadness is a Good Thing" (슬픔이 좋을 때)이 있다. '어떻게 슬픔이 좋을 수 있나?'라고 의아한 기분을 들게 만드는 제목, 잘만 쓴다면 독자가 본문이 무슨 내용인지 바로 읽어보고 싶게 만들 제목이다.
c. 질문/Question
예를 들자면 "Shall We Walk Together?" 혹은 "Plagiarism: Who Benefits?"라고 질문을 떡하니 제시한다. 앞서 소개한 '아이러니' 종류의 제목처럼 독자의 눈을 바로 사로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제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자유롭고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종류다.
d. 주제의 문구/Word or Phrase from the Subject
내가 선정한 <에덴의 동쪽>의 주제는 '외로움'이었다. 고로 내 에세이의 제목을 "Surviving Loneliness" (외로움을 극복하기)로 지었었다.
e. 주장의 문구/Word or Phrase from the Theme
앞서 말한 주제의 문구를 응용한 제목과 별 다른 건 없다. 다만 주장과 주제의 차이는 작가의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밖에. 보통 Theme '테마'하면 '주제'라고 간단히 번역하겠지만 내가 배운건 좀 달랐다. '테마'란 '주제'에서 오히려 더 나아가 작가의 '주장'이었다. 주장 = 주제 + 작가의 생각. 예를 들자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제'는 '복수'이고 '주장'은 '복수는 인간이 몫이 아니다'라고 볼 수 있다.
2. 인용문
<에덴의 동쪽> 하면 바로 생각나는 주제는 '선과 악'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너무 뻔한 에세이를 쓰기는 싫었다. 그래서 다 읽은 소설을 훑어보고 또 훑어보았다. 그때, 바로 이 문구를 찾았다:
"I got lonesome... I am incomparably, incredibly, overwhelmingly glad to be home. I've never been so goddam lonesome in my life." - Lee, the servant
"외로웠어... 정말이지 집에 와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미치도록 행복해. 내 인생에서 그렇게 뼈 빠지게 외로웠던 건 처음이었어." - 리, 하인
'외로움'이 인간에게 끼칠 수 있는 보편적인 영향을 간단하게 잘 표현한 문구다. 외로움 때문에 인간이 죽을 수도 있는데,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뭐가 있겠나. 선이든 악이든, 아무도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 내가 느낀 존 스타인백 작가의 주장에 좀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용문을 찾아 책장을 또 한번 넘겼다.
"[Charles] worked on the farm mightily because he was lonely... His dark face took on the expressionlessness of a man who is nearly always alone."
"찰스는 외로워서 농장 일을 미친 듯이 했다. 그의 어두운 낯빛은 마치 항상 혼자인 남자의 상처 어린 무표정을 보는 듯했다."
찰스의 외로움을 묘사하는 문구가 꽤 와 닿아서 에세이 도입부에 포함하기로 했다. 내가 지은 제목과 내가 선택한 인용문을 통해 독자들은 본문을 읽기 전부터 전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접하게 되는 것이다.
3. 독자와의 의리
독자를 믿어라. 어떤 글이든 문학 분석도 마찬가지로 독자들을 생각해가면서 써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분석은 서평과 다르다. 서평은 보통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시작한다. 책을 읽어보지 못한 자들이 독자의 대상이 되기에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학 분석의 독자는 이미 책을 읽어본 자들로 예상된다. '독자를 믿어라'라는 말은 이에서 본 따왔다. 나의 독자들은 내가 굳이 책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에세이에서 주장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굳건히 믿는 것이다. 요즘 영화 관객들은 똑똑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독자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4. 시작: 짧고 강력하게
Recreating “the best-known story in the world” of Cain and Abel, John Steinbeck’s East of Eden portrays the clear juxtaposition of good and evil through numerous characters (268). Within such evident contrast, however, Steinbeck always seems to show one common circumstance of all characters not only in East of Eden, but in many of his other works as well: loneliness.
존 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은 모두가 아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며 수많은 캐릭터들을 통해 선과 악의 차이를 말끔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스타인백은 이 현저한 대조 설정 안에 에덴의 동쪽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의 인물들까지 서로 한 가지 공통되는 것을 보여준다: 외로움.
당시 내가 썼던 에세이의 도입 부분. 구차하게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천천히 본문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시작은 짧고 강하게 두는 게 좋은 듯 싶다.
5. 본문: 읽기 쉽게
앞서 말한 나의 주장은 "선이든 악이든, 아무도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였다. 이제부터 이 주장을 소설에서 나오는 '증거물'로 받춰줘야 한다. 하지만 독자는 물론 필자도 글을 따라가기 쉽게 어느 정도의 구성은 필요하다. 나는 선의 인물과 악의 인물로 캐릭터들을 분류했다. 예를 들자면 선을 상징하는 '샘 해밀턴'과 '리', 악을 상징하는 '찰스 트래스크'와 '캐시 에임스'로 말이다. <에덴의 동쪽>에서 선악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은 훨씬 더 많지만 이들이 '외로움'이라는 주제에 가장 걸맞은 캐릭터들이라고 판단했다. 에세이를 쓰면서 악의 인물들을 먼저 탐구하기로 했는데 이에 있어 찰스는 소설에서 외로운 모습들이 빤히 보이는 반면, 캐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외로움이라는 인간적인 감성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을 정도로 나쁜 여자다. 하지만 --
"... [Cathy's] body shook with something that felt like rage and also felt like sorrow."
"그녀의 몸은 격노와 슬픔으로 심하게 떨렸다."
자신을 향한 아담의 순수한 사랑을 매 순간마다 짓밟고 헐뜯었던 캐시. 아담이 자신을 떠날 엄두도 못 낼뿐더러 마음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희미하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며 아담은 캐시를 떠난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캐시는 격노와 슬픔에 온 몸이 파르르 떨린다. 소설 끝까지 그녀는 인간답지 않은 절대적 악으로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안에 외로움 같은 감정의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다는 걸 보여준 문구였다. 선을 대표하는 '샘 해밀턴'과 '리'를 보면 부유하진 않더라도 가족과 친구들만 있다면 절대권력도 부럽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들로 통해 스타인백은 절대권력이 돈과 힘을 주어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안겨주는 건 아니기에 그보다 외로운 건 없다고 주장한다.
6. 그 외 소설 응용 (필자 선택)
에세이 내용을 소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연결하는 것도 알찬 문학 분석을 쓰는 데에 좋은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스타인백의 <생쥐와 인간>을 사용했다. 스타인백이 오로지 <에덴의 동쪽>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선이든 악이든, 아무도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는 주장을 내린다는 것을 엿보기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생쥐와 인간>에서는 '조지', '캔디', 그리고 '크룩스'가 있다. 조지는 '레니'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어도 레니는 결코 조지가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못 되었다. 이 둘을 이해해줄 만한 똑똑한 친구도 없었다. 심지어 결말에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외로움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까지 놓이게 된다. 반면 캔디는 친구 한 명 없는 노인이었다. 오랜 시절 키우던 개까지 잃게 된다. 그는 너무 외로워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조지와 레니의 미래 '꿈동산' 계획에 동참하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크룩스는 흑인 장애인이었다. 소설에서 많이 등장한 이는 아니었지만 인종차별과 신체적 장애 때문에 어찌 보면 가장 격한 외로움을 겪는 인물이기도 했다. 다른 소설의 캐릭터들을 응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몫이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내 에세이에 신빙성을 더더욱 실어준 선택이었다.
7. 결론: 열린 결말
시작이 중요한 만큼 결말 역시 중요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문학 분석 에세이의 결론을 쓸 때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절대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열린 결말을 두는 게 효과적이라고 배웠다. 분석이란 독자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독자를 설득하는 것도 아닌 독자와 의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덴의 동쪽>을 읽으면 작가 존 스타인백이 얘기하려는 '외로움'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주장에 대한 절대적인 결론보다는 무한한 의견들을 환영할 열린 결말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Nevertheless, everyone trapped inside this darkest room in the world will try to claw their way out—and who knows, perhaps someone will discover the light outside. After all, Steinbeck simply says no one endures loneliness; he does not say everyone dies or falls apart from it. Through Lee, who finds his way back home, Steinbeck opens doors to exit from loneliness and solitude other than by means of death.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이라는] 가장 어두운 방에 갇힌 모든 이들은 어떻게든 도망치려 할 것이다. 그래도 어느 한 명이라도 바깥의 빛을 볼지 누가 아나. 스타인백은 그 누구도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외로움을 피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빛을 보는 '리'를 통해서 스타인백은 죽음 외에 외로움을 빠져나올 수 있는 문들을 열어놓는다.
이런 식으로 색다른 의견들을 위해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좀 더 깔끔한 느낌의 결말이 될 수 있다.
8. 자신감
에세이의 필자로서, 작가로서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자들은 필자인 나를 꿰뚫어보는 무시 못 할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나의 글과 나의 의견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독자들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을 믿자. 자신감을 가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