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BELIEVE' 를 북돋아 주는 진정한 지도자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뒤흔들고 혼란에 빠트린 2020년, 애플TV+에서 새로운 코미디 드라마가 등장한다. 집콕에 지쳐 우울하고 무엇이든 아니꼽고 다른 이들과의 교류가 고팠던 우리에게 테드 래소는 산뜻한 산소와도 같았다. '축구'라 하면 미식축구밖에 모르고 하물며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미국인 코치를 영국 프리미어 리그 구단의 감독으로 고용한다는 다소 말도 안되는 설정으로 테드 래소는 다채로운 캐릭터들과 깊이있는 메시지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사로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는 축구보다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며 축구보다 정신건강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존감, 자신감, 자만심, 자기애, 자부심 등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지대한 요즘, 테드 래소는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마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말하듯 위트있고 적절하게 풀어낸다.
아직 시즌3가 완결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방영된 내용만으로도 테드 래소는 분석할 이야기거리가 굉장히 많다. 주인공 테드의 외유내강적인 인성과 리더쉽, 네이선 셸리 (혹은 네이트)의 낮은 자존감, 로이 켄트의 강인하면서도 예민한 남성상, 제이미 타트의 자기애와 진정한 성장 등 이 시리즈는 주변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을 극대화 시키면서도 뻔한 스토리와 대립구도를 추구하지 않고 성숙하고 따뜻하게 이야기의 실타래를 하나 하나 풀어나간다. 타이틀 캐릭터인만큼 이번에는 주인공 테드 래소에 집중해보려 한다. 이 남자는 어떻게 본인을 이용하여 구단 전체를 망가뜨리려 했던 상처깊은 구단주의 마음을 치유하고, 본인을 맥도날드 캐릭터와 동급이라 여기는 팀 캡틴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첫 만남부터 본인을 쓰라린 구설수에 맘껏 올리던 기자들의 마음을 낚았을까.
테드는 참 착하다. 따뜻하고 밝고 유쾌하다.
남들이 본인을 싫어하는 티를 한없이 내도 마냥 좋다고 친절하게만 대한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다른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나는 이 사람을 이용하고 욕하고 짓밟으려 하는데 왜 아무런 타격감이 없는 것 같지? 기가 쎄보이지도 않고 그저 한량한 아저씨로 밖에 안보이는데... 하는 의문이 든다.
해답은 시즌 1 에피소드 8 'The Diamond Dogs'에서 등장한다. 본 회차에는 테드의 탁월한 인간성과 리더쉽이 돋보이는 명장면이 있다. 구단주인 레베카는 극 초반 전구단주이자 전남편의 불륜으로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그를 향한 증오에 지배당해 테드가 AFC Richmond의 감독으로서 실패할 것을 예견하며 그로 인해 구단을 무너뜨리겠다는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테드를 고용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처음에 시청자의 눈에서 레베카는 과연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라는 징검다리를 아슬아슬하게 이쪽 저쪽 넘나드는데, 사람의 단점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장점을 높이 사고 강점을 발견하는데 있어 일가견이 있는 테드의 눈으로 바라보면 레베카는 훨씬 달리 보인다. 그는 강인한 여성이자 구단주이며 테드 본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기회를 제공한 인물이다. 'The Diamond Dogs' 회차에서는 그런 레베카 앞에 계속해서 심경을 건드리고 되려 긁어부스럼을 내는 루퍼트가 (레베카의 전남편) 등장한다. 루퍼트는 레베카와 테드를 얕보며 레베카의 자존감을 짓밟아내는데, 곧이어 테드가 주변에 있던 다트 게임으로 루퍼트의 관심을 돌린다. 테드는 돈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레베카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을 내기로 걸고 자신만만한 루퍼트는 이에 승낙한다.
게임은 막바지에 다다르며 테드는 판을 대역전시킬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만이 남았다. 콧방귀를 뀌며 테드에게 오히려 행운을 비는 루퍼트. 이때 테드가 특유의 선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띄며 말한다.
사람들은 항상 나를 얕봤던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한동안 이해를 못했었어요. 한때는 짜증나기도 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아들내미 학교 데려다 주는 길에 큰 벽에 새겨져 있는 월트 휘트먼의 명언을 보았어요. '판단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라.' 마음에 들던대요.
다트 하나를 던지며 - 명중.
그 글귀를 읽고 다시 차에 타서 출근을 하는데 깨달았어요. 나를 깔보던 그 수많은 사람들, 단 한명도 나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는 걸. 이미 세상의 이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기 방식대로 이것저것 판단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비판하는 사람들이었죠. 내가 누구였건간에 그 사람들은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정말 나에 대해 궁금한게 있었다면 물어봤을 거 같아요. '다트 많이 해봤어?'라고.
또 하나의 다트를 던지며 - 명중.
그랬다면 '네, 열살때부터 6년간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랑 매주 일요일 오후 스포츠바에서 게임하곤 했죠'라고 대답했을 겁니다. 바베큐 소스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
또, 또 명중.
그렇다 - 판단하지 않고 호기심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것. 월트 휘트먼의 명언을 빌려한 말이지만 이 대사야 말로 그간 선보인 테드의 인간성을 나타낸다. 극 초반 테드의 입장에서 보면 초면부터 이유없이 벽을 쌓아놓은 듯한 구단주 레베카, 허드렛일을 담당하며 한없이 소심해 보이는 정비사 네이트, 고향을 떠나 기쎈 선수들 사이에서 쭈그러져 보이는 듯한 축구선수 샘 오비사냐 등 이들을 보며 과연 어떻게 서로 더 알아갈 수 있을까, 이 사람이 필요한 격려 혹은 이 사람이 가진 잠재능력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호기심을 갖는 마음가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인물이 바로 '테드'이다.
다트 게임 장면에서 나온 위 모놀로그 이전에 눈여겨볼만한 요소는 루퍼트가 테드에게 다트에 대한 질문을 하기는 했다는 것이다. '다트 좋아하나, 테드?' 이 질문에 테드는 '아, 뭐 그냥저냥요.' 라고 답한다. 하지만 루퍼트의 질문은 애초에 깊은 호기심보다는 얕은 편견을 유발한다. 테드에 대한 관심이 딱히 없는 루퍼트는 그의 답변으로 인해 테드는 그저 그런 다트 초짜라는 편견이 함축된 주관적인 생각을 하게된다. 그러나 앞서 테드의 모놀로그에서 이미 서술했듯 만약에 루퍼트가 '다트 많이 해봤어?'라고 질문했다면 테드의 말대로 더 깊은 답변을 받지 않았을까. 그래서 테드를 얕보지 않고 경계심과 함께 더 치밀하게 게임에 임했다면 루퍼트가 이겼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떠한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리더쉽은 배가 된다. 좋은 질문을 하면 좋은 답을 얻게 되고, 특히나 테드 래소와 같은 리더쉽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은 그 좋은 질문으로 얻게 된 좋은 지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를 습관적으로 묻다 보면 미리 판단하지 않고 호기심으로 일과 사람을 대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과 우리 사회에 대한 무한한 배움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효과적인 질문은 테드가 (월트 휘트먼의 명언을 꼽으며) 말하듯 비평이 아니라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태도가 바로 테드 래소의 따뜻하고 강인한 리더쉽의 원천이라고 본다. 극중 테드는 절대 완벽한 인물은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을 위해서 헤쳐나아가야 할 숙제가 꽤 많이 있는 사람이다. 그저 분명한 것은 그에게서 본받을 만한 모습들 또한 꽤 많이 있다는 것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나를 바라봐주는 지도자. 내가 나를 믿기도 전에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지도자. 내 안의 믿음 - 나 자신에 대한 믿음, 나의 팀에 대한 믿음 - 을 이끌어내주는 지도자. 상상만 해도 든든하고 벅차오른다. 하지만 그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내 안의 호기심을 깨워내고 나와 내 주변인들의 장점과 강점에 집중하면 오히려 내 안의 테드 래소가 깨어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리더쉽을 현실에서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