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에 하지 말아야 할 대화가 있다. 바로 종교와 정치에 관련된 이야기다. 명절 지나고 나면 사건 사고 소식에 꼭 종교나 정치와 연관된 가십거리가 보인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형제간에도 마찬가지다. 종교나 이념이 다르면 가급적 그런 대화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면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용재총화』에 양녕대군의 일화가 있다.
효령대군은 불교에 심취하여 절에 진심을 다 쏟았다. 어느 날 형 양녕대군이 효종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뒤에 두 첩을 따라오게 하고, 오른손에는 매를, 왼손으로는 개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잡은 꿩과 토끼로 고기를 굽고 술을 데워먹었다. 그러고는 대취하여 법당에 들어가서 함부로 행동하였다. 이에 효령대군이 "형님은 이렇게 나쁜 업을 쌓으면 다음 생에 지옥을 가시게 되는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양녕대군은 "착한 일을 행한 사람은 구족(九族)이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난다고 했다. 하물며 형제간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으냐, 살아서는 임금의 형으로, 죽어서는 보살의 형이 되어 반드시 천당에 갈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답했다.
양녕대군의 대답이 걸작이다. 살아서는 임금의 형으로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고, 죽어서는 보살의 형이니 신선의 세계인 도리천에 태어난다며 스스로 위로한다. 아버지 태종이 임금이 되기 위해서 친족을 죽인 예를 보았으므로 맏이인 양녕대군은 늘 목숨의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동생 효령대군이 거처하는 절에 찾아와서 술과 고기를 마시고 첩들과 놀아난 모양인데, 아마도 마음을 터놓을 곳은 그래도 형제간이 최고였던가 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임금의 형이요, 불심 가득한 동생의 형이니 그의 처지가 소위 '금수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불우한 시절을 살았다.
옛이야기는 뜻하지 않게 교훈을 넌지시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효령대군은 자신의 종교를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양녕대군의 행실을 탓할 뿐 자신이 믿는 종교에 관해서는 말이 없다. 심지어 불가에서 금지하는 육식을 하고 첩을 데리고 와서 욕정을 불태우는 형을 두고도 형의 안위를 걱정할 뿐이다. 형은 그런 동생을 보며 동생 덕을 보자며 도리천 이야기를 하니 두 형제가 싸울 일은 절대로 없었겠다.
불교에서 말하는 도리천은 신선의 땅이다. 한자로 도(忉) 자는 근심할 도이다. 마음심(心) 변에 칼도(刀) 자가 붙어서 칼을 품고 있다는 말이다. 한 사람은 마음에 품은 칼을 불도에 귀의하여 다스리고, 한 사람은 술과 여자로 그 칼을 다스린다. 그 덕에 더 이상 형제를 죽이거나 반역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종대왕은 성군이 되었다.
전라도로 시집간 처제가 전라도 출신 동서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고향인 대구에 온다. 그러면 아내가 미리 나에게 입단속을 한다. 정치 얘기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입단속을 한다 한들 얘기를 하다 보면 정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생활 형편이 나보다 나은 동서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나는 잘 들어주고 밥값을 내라고 한다. 들어준 값이니까. 내가 말을 많이 할 때는 내가 낸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으니까. 비록 친형제 간은 아니더라도, 형제와 다름없으니까.
출처: 한국종합고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