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사또

by 홍생

초등학교 시절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채변 검사였다. 지금처럼 변변한 화장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생 관념이 철저한 시절도 아니어서 겨울이면 손에는 늘 딱지가 앉았고 손톱 밑에는 때가 새까맸다. 놀이의 대부분은 흙을 가지고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자연히 대변 검사에서 회충이 안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여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회충약을 받아 입에 넣고는 양은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라서 벌컥벌컥 마셔야 통과였다.


먹을 것도 변변찮았던 시절에 뱃속에 들어간 영양분을 회충에게 다 뺏겼으니 살찔 겨를도 없었다. 시장통에서는 회충약 장사꾼들이 있었는데 입으로 불을 푹푹 뿜어내면서 나처럼 삐쩍 마른 어린아이를 앞으로 불러내서 어떤 약을 먹이고는 기다란 요충을 뽑아내곤 했다. 그게 진짜 엉덩이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조작인 건지 지금도 헷갈린다. 요즘은 일 년에 한 번, 알약 하나를 온 가족이 복용한다. 청결한 세상이 되어서 회충이 없겠지만 예방 차원이다.


『용재총화』 제7권에 나오는 이야기다.

무관 양(梁) 아무개가 공주 목사가 되었는데 더운철 파리가 많은지라, 양이 이를 싫어하여 주중(州中)의 아전에서부터 밑으로 기생과 종들에 이르기까지 매일 파리 한 되를 잡아 바치게 하고, 엄하게 법을 정하여 이를 독촉하니 상하가 다투어 파리를 잡느라고 쉴 겨를이 없었다. 이리하여 심지어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면서 파리를 사는 사람까지 있게 되어 당시 사람들이, “승목사(蠅牧使)라 이름하고, 고을 다스리기를 파리 잡듯이 하면 명령이 어찌 행해지지 않으리오.” 하였다. 〔한국 고전번역 DB〕


지금으로 치자면 공주 시장으로 부임해 온 양(梁) 사또가 파리를 싫어했던 모양이다. 백성들이 온통 파리 잡기에 나섰다. 파리를 잡지 못한 자들에게는 엄한 법을 적용했다. 그러자 일이 바쁘거나 파리만큼 날래지 못한 사람도 있는 법, 당연히 파리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파리를 잡아서 파는 사람이 생겼다. 그래서 원님 덕에 파리가 다 사라졌다. 그의 별명이 파리 사또(승목사)가 되었으니, 상황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승목사 덕분에 환경은 깨끗해졌고 심지어 파리잡이라는 신종 직업까지 생겼다. 파리를 잡으니 청결한 환경이 되고 파리로 인해서 전염되는 전염병의 창궐도 줄었지 싶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른 것을 전해준다. 이야기 중간에 ‘상하가 다투어 파리를 잡느라고 쉴 겨를이 없었다.’라는 부분만 보더라도 관아의 일이 제대로 돌아갔을 리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고을 다스리기를 파리 잡듯’ 했으므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을 것이다.


물론 파리 잡는 일이 그릇된 일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경중이 있다. ‘빈대 잡느라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속담이 그냥 나왔을까? 성가신 어떤 일을 해결하려다가 정작 큰일을 놓친다는 이야기다. 차라리 방법을 달리해서 파리가 생기지 않도록 환경교육을 했더라면 양 아무개 목사는 파리 사또가 아니라 환경교육의 선구자가 되었을 일이다.


그때 먹은 회충약이 효과가 있었을까, 궁금하다. 회충약을 먹을 때마다 왠지 자존감이 한없이 쭈그러들고 어딘가로 숨고 싶었는데, 여학생들은 오죽했을까? 요즘엔 그랬다가는 학생 인권 침해로 난리가 날 테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시절 여학생들도 떠오르고 괜히 엉덩이도 근질근질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희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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