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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

by 홍생

얼마 전에 심리 상담에 관한 연수를 받았다. 연수 과정에서 빈 의자를 앞에 두고서 강사는 한 사람씩 그 의자에 앉게 했다. 강사는 담담하게 의자에 앉은 나이가 사십이 된 사람에게 이십 대의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멀뚱멀뚱하던 사람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일이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소환해서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기도 하고, 딸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하라고도 했다. 텅 빈 의자에 앉는 순간 모두가 실제로 상황에 몰입했다.


『용재총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내 친구 손영숙(孫永叔)은 벼슬하지 않은 선비 시절에 장난삼아 10여 명이 떼를 지어 절에 돌아다니며, 몽둥이로 중을 때리고 물건을 빼앗는 짓을 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모두 의금부에 갇혀서 국문(鞫問)을 받았다. 이때 금법(禁法)이 엄하지 못하여 조정의 선비들이 모두 들어가 볼 수 있었으므로, 아침저녁으로 주찬(酒饌)이 많이 쌓이게 되었다. 손영숙이 말하기를, “구복(口腹)을 채우기에는 이곳만한 데가 없으니, 만약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먹을꼬.” 하니,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그 뒤에 대간(大諫)이 되어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였을 때 마침 형옥의 폐단에 대해 논하자, 손영숙이 아뢰기를, “젊어서 옥(獄)에 있어 보니 옥은 죄인을 가두어 두고 괴롭게 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영화로운 곳이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옛사람의 말에, ‘땅에 금을 그어놓고 옥이라 하여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였으니, 옥이 아름답다고 한들 사람이 어찌 영화롭게 생각하겠느냐.” 하니, 좌우가 모두 놀랐다. 손영숙은 진실하고 다른 뜻은 없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말을 실수한 것이었다. 〔출처: 한국고전종합DB


지금이라면야, 어림도 없는 이야기겠지만, 『용재총화』가 나온 해가 1525년 중종 20년이었으니, 연산군을 몰아낸 선비들이 중종을 임금으로 세우고 위세를 한껏 날리던 시절이라면 가능한 이야기다. 손영숙은 중을 때리고 물건을 빼앗다가 옥에 갇혔는데, 친구들이 면회를 오면서 술과 안주를 옥에 가지고 왔다. 이에 손영숙은 감옥살이가 먹고 마시기에 최고의 장소라고 이야기한다. 후일 그가 대간이 되었을 때, 그때 이야기를 하자 임금이 "옛사람은 땅에 금을 그어놓고 옥이라 하여도 들어가지 않았다."라며 손영숙을 꾸짖었다.


한 마디로 조선 중종 시절에는 감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원래 어떤 제도나 사물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오용되거나 남용되기 쉽다. 임금이 말하기를 '땅에 금을 그어놓고 옥이라 하'는 부분이 나온다. 어린 시절에 책상을 같이 쓰면서 선을 그어놓고는 넘어오지 말라며 보이지 않던 벽을 쌓았던 일도 있었다. 가상의 선이기는 하지만 감히 넘어가지 못했다. 마음을 닫았기 때문이었다. 임금은 손영숙에게 마음가짐을 새로 할 것을 주문한다.


어떤 일에 선을 긋고 말고 하는 일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선을 긋고 담을 쌓으면 그와는 멀어진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은 담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친구를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빗금을 그은 후에는 만남이 소원해졌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 보면 별 뜻 없이 한 말, 의미 없이 한 행동을 내 맘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글을 적는 이유는 이런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글 의자에 앉으면 많은 일들이 떠 오르고 그 일들이 새삼스럽게 좋거나 나쁘게 다가온다. 어제 적은 글을 오늘 보면 아, 내 생각이 그랬구나, 하며 스스로 깨닫기도 한다. 임금의 힘이 약해 바로 꾸짖지 못하고 옛일을 끄집어내 신하에게 가르침을 주는 장면이 영 어색하기는 하다. 그래도 임금이 그은 선 안에서 그가 깨우침을 얻었다니 다행이다. 가끔 빈 의자에 앉아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일, 뭉뚝뭉뚝 잘린 관계를 다시 잇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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