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몇 있다. 나이도 차이가 나고 출신 학교도 다르고 가르치는 과목도 다양한데 어쩌다 보니 친하게 되었다.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봐도 쉽게 떠오르는 이유가 없다. 굳이 따져보면 짚이는 것이 있기는 한데, 아마도 누군가 먼저 “밥을 먹자”라고 했지 싶다. 그렇게 밥을 먹다 보니 다음에 또 누군가 밥을 샀을 것이다. “언제 밥 한 그릇 합시다.”를 미루지 않고 실천했던 이유로 지금도 자주 같이 밥을 먹는다. 밥 먹고 살기 위해 같은 일을 하고 있으므로 더욱 친하게 되었지 싶다. 어쩌다 밥 먹을 때를 놓치는 수가 있다. 그런 날은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데 영 마뜩잖아서 그만 건너뛰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은 허기도 지지만 왠지 마음도 허전하다.
『청성잡기』에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한다.
모든 물건은 속이 다 채워져 있는데 배 속만은 비어 있어서 먹은 뒤에야 채워진다. 그런데 반드시 하루에 두 번은 먹어야 하니, 아침에 채워 넣은 것은 저녁이면 비고 저녁에 채워 넣은 것은 아침이면 비게 된다. 부드러운 것이나 딱딱한 것이 모두 뱃속으로 들어가니, 독해서 먹지 못하는 것은 약으로 만들어 병을 치료한다. 이것저것 아무거나 먹어서 세상의 재앙이 되니, 그 발단이 되는 것은 배만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조물주가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실로 여기에 달려있으니, 이것이 없다면 하늘이 어떻게 사람을 제어할 수 있으며 임금이 어떻게 백성을 부릴 수 있겠는가. 열자(列子)가 말하기를, “사람이 입고 먹지 않으면 군신 간의 도가 종식된다.” 하였으니 어찌 군신 간뿐이겠는가. 오륜의 도도 아울러 종식될 것이다. 어찌 저 금수를 보지 않는가. 떼 지어 살고 짝지어 지낼 뿐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통제하는 방법이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며, 나라도 임금도 오륜도 모두가 먹고사는 문제에 달렸다는 청성 선생의 말씀이다. 그러면서 금수(禽獸)를 들어 아무런 도(道)도 깨우치지 못한 채 그저 본능대로 살아갈 뿐이라고 전한다. 먹고사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비우기’의 실천에 대해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것이나 막 먹다가는 ‘세상의 재앙’을 불러온다고 적어놓았다. ‘아무것’이라는 말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공짜’이거나 ‘청탁’과 관련된 것이겠다. 그것은 결국 재앙을 불러온다고 하니 재앙은 곧 죽음이 아니겠는가.
안 그래도 뉴스만 틀면 누가 뭘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다는 소식이 왕왕 들려온다. 또, 그 때문에 잘나가던 사람이 어느 날 사라지기도 한다. 먹는 문제가 중요하긴 한데 잘 가려서 먹으라는 청성 선생이 말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마음에도 허기가 질 때가 있다. 허기진 마음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관심’이 최고의 양식이 아닐까. 주변에 배고픈 사람이 있다면 불러서 밥을 사고, 마음이 허전한 사람이 있다면 불러서 말을 건네볼 일이다. 상대의 마음에 중요한 사람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바로 ‘밥을 사는 일’에 있다. 멀리 갈 일도 아니다. 혼자 드라마와 사랑에 빠진 아내에게 외식이나 하자고 말을 붙여봐야겠다. “참 뜬금없다, 지금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 거야!”라는 말이 돌아와도 종일 비어 있던 마음이 잠시나마 충전될지 모를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