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지혜로운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코 솔로몬을 꼽는다. 어느 날 솔로몬에게 두 여자가 찾아와 서로 자신의 아이라며 재판을 건다. 그러자 솔로몬은 아이를 둘로 갈라서 반반씩 가지라고 하자 한 여자가 양보한다. 그러자 솔로몬은 양보한 여자가 아기의 엄마라고 판결한다. 대단히 지혜로운 판결이다. 그런데, 그런 판결이 저 먼 나라 땅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추측록』에 다음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영천(潁川)에 부자가 있었는데 형제가 동거하였다. 두 부인이 모두 임신하였는데, 장부(長婦)는 낙태하고도 그것을 숨기고 있다가 제부(弟婦)가 난 아들을 밤에 도적질하였다. 다투어 송사한 지 3년이 되었더니, 승상 황폐(黃霸)가 청당에 나아가 앉아서 사졸을 시켜 아이를 안아다 각각 10보가 떨어진 두 부인의 중간에 놓고 부인들에게 ‘너희들이 누구든지 먼저 데려가라.’ 하였다. 장부가 매우 급박하게 가서 마구 붙잡으니, 아이가 크게 울었다. 제부는 아이가 다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며 그대로 놓고서는 매우 슬퍼하였고, 장부는 대단히 좋아하였다. 이에 황폐가 ‘이 아이는 아우의 아들이다.’ 하고, 장부를 꾸짖어 심문하니, 이에 복죄하였다. 이것은 사람에게 자애하는 천륜이 있는 것을 헤아려 그 실정을 얻은 것이니, 이것을 미루어 행한다면 지극한 인정에서 발하는 것이 어찌 다만 이 한 가지 일일 뿐이랴.
『추측록』은 1836년 최한기가 적었다. 시작이 재미있다. 영천에 부자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지만, 옛날에는 여러 세대가 모여 살았다. 게다가 이 집은 부자여서 재산 문제가 있었던가 보다. 그러니 유독 ‘부자’라는 말을 앞에다 두었다. 이 집에도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 한집에 살았는데, 그들의 처가 모두 임신했다. 그런데 큰아들의 아내는 아이를 낙태했고, 둘째 아들의 아내는 아들을 낳았다. 욕심인지 시샘인지 큰아들의 아내는 그만 아기를 훔치고 말았다. 이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승상 황폐가 부모의 마음을 이용해서 누가 진짜 어미인지를 밝혀낸다. 진짜는 늘 본질 그 자체에 있다. 아기의 진짜 엄마는 행여 아기가 다칠까 함부로 붙잡을 수 없었지만, 거짓 어미는 본질이 돈에 있었으므로 아기의 울부짖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이치가 다 그렇다. 무엇이든 그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식당에 온 손님을 대할 때 허기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를 돈으로 본다면 이미 그 본질이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가 싱싱할 수 없고, 오로지 수익을 위해서만 요리하게 된다. 그런 집이라면 두 번 다시는 가지 않게 되고, 곧 식당의 간판이 바뀐걸 볼 수 있다. 허기진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서 대접했다면 그 집은 번창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전해주는 교훈은 승상의 지혜로운 판결이지만, 사실은 본질이 무엇인지 알면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나 중국의 승상 황폐는 다른 시간, 다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본질을 잘 알았던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세월이 지나도 칭송받는다. 그런데, 성경의 기자나 『추측록』의 저자인 최한기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작가의 본질(효용가치)은 바로 적는 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