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각종 SNS가 소통의 채널이지만 한때 비디오가 유행했다. 비디오의 시작에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을 두려워했다.’라는 안내가 나온다. 그리고 지금은 불법 비디오가 아이들을 비행 청소년이 되게 함으로 주의하라는 말이 뒤따른다. 다 맞다. 하지만 옛날 문헌을 살펴보면 호랑이와 관원이 없는 곳이 최고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패관잡기』 제2권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상에 전하기를, “관청에서 무당에게 세포(稅布)를 너무 많이 거두어들였으므로, 매양 관원이 문에 이르러 외치면서 들이닥치면 온 집안이 쩔쩔매고 술과 음식을 갖추어 대접하면서 기한을 늦추어 달라고 애걸하였다.” 하였다. 이런 일이 하루걸러 있거나 연일 계속되어 그 괴로움과 폐해가 헤아릴 수 없었다. 설이 되면 광대들이 이 놀이를 대궐 뜰에서 상연하였더니, 임금이 명을 내려 그 세포를 면제하게 하였으니, 광대도 백성에게 유익하다 하겠다. 지금의 광대들도 아직 그 놀이를 전하므로 그것이 고사(故事)가 되었다. 중종 때에 정평 부사(定平府使) 구세장(具世璋)이 토색질하여 만족함이 없었는데, 안장을 팔려는 사람을 부(府)의 뜰로 끌고 들어와서 친히 흥정하여 며칠 동안 그 값을 따지다가 끝내 관청의 돈으로 샀다. 광대가 설에 그 상황을 놀이로 상연하였더니 임금이 묻는 데에 대답하기를. “정평 부사가 안장을 사는 장면입니다.” 하였다. 드디어 명을 내려 정평 부사를 잡아다가 심문하고 마침내 장물죄로 처벌하였으니, 광대 같은 자도 능히 탐관오리(貪官汚吏)를 규탄(叫彈)하고 공박(攻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출처: 〔한국고전종합DB〕
임금이 있는 대궐에서 광대들이 한바탕 노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 내용이 악덕 탐관오리들이 무당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는 장면이며, 관리가 백성의 세금으로 자신이 타는 말에 얹을 안장을 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고는 임금이 고을 원을 잡아다가 처벌한다. 그리고 광대와 같이 미천한 자들도 능히 탐관오리를 규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니 어디서든 공명하고 정대하게 관의 일을 처리하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이 글은 중종 무렵에 나온 글이다. 중종이라면 연산군을 폐하고 올라선 왕이다. 2005년 12월에 <왕의 남자>라는 영화가 나왔다.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환데, 거기에 보면 광대들이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가 사약을 마시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에 연산군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른다. 아마도 <왕의 남자>의 시작이 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식과 지혜가 확장된다. 더군다나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왕의 남자>의 시작이었을 이런 글을 발견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어 고전 읽기를 멈출 수 없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 같은 일개 선생도 이런 글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낮은 계층에 있던 광대들이 백성들의 염원을 담아 한바탕 놀이마당을 펼쳤듯이 나의 글쓰기도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신명을 불러일으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