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남은 것

by 청명

평생 나의 세계일 것 같은 거대한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슬프고 공허하고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 보였다. 처음에는 침울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 싫어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별의 아픔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찾아온 이 상황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고 피하는 것은 지난 시간과 관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피하면 피할수록 오랜 시간 함께한 시간이 없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그건 싫었다.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내보내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추억을 계속해서 꺼내보게 한다. 더 이상 쌓이지 않을 추억을 꺼내어 보는 것은 마치 꺼내어 볼수록 소중한 것이 닳아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중해서 닳지 않도록 꼭꼭 숨겨놓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추억이 쌓이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이 그 추억을 꺼내어 보게 만들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는 것들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충분히 들춰보고 느껴볼수록 무뎌진다. 그 무뎌지는 감정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아쉬움은 이제 정말 이별을 실감하듯 슬픔으로 변했다. 그 슬픔의 바다는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이별, 상실에 마법의 알약은 없다. 그 흔하디흔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뻔하고 무책임해 보여 내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아 맴돈다.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늘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겪을수록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말들이다. 새로운 의미가 피어나겠지. 그렇게 믿으며 시간이라는 약을 먹는다. 떨어져 나간 빈자리를 바라본다. 그 빈자리엔 오직 나 밖에 남지 않았다. 혼자가 되니 나와 더 가까워진다. 한동안 떨어져 나간 자리를 계속해서 바라볼 것 같다. 충분히 둘러보아야 다시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다시 무언가 피어날 것 같다.

나쁘지 않다. 감정에 무뎌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슬픔이라는 감정이 나쁘지 않게 다가온 것이었다. 살면서 언제 이렇게 슬퍼해봤던가 돌아본다. 그냥 이 가득 찬 슬픔이 그간의 추억이 헛되지 않았다는 위안을 준다. 공허함과 아픔은 소중함에 자리를 내어준다. 생각해 보니 나와 이렇게 오래 붙어있던 적이 없었다. 그냥 흘러가듯 살았다. 하지만 이별이라는 사건은 나를 붙잡고 멈춰세웠다. 거기엔 내가 있었다.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내가 있었다. 슬픔이란 소중함을 안고 있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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