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외로움

by 청명


최근 들어 외로움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아마도 내가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더욱 관련 주제의 글을 쓴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진 않았다. 적어도 한동안은 내가 계속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관련 주제의 글을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재밌게도 내 논문의 주제가 외로움이다. 지도교수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논문의 주제는 저자가 처한 삶의 맥락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외로움에 대한 호소는 자연스레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돌아보게 만들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 들어 더욱 느끼는 것은 내가 사회의 규칙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성인은 모두 저마다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그 돈을 소비하며 삶을 살아간다. 돈이 소비되어야 사회가 유지되기 때문에 사회는 더욱더 많은 돈을 소비하도록 조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누구는 오히려 자본주의를 찬양하기도 한다. 근데 나는 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자본주의처럼 돈이라는 수단이 중요할수록 삶의 목적이 돈이 되는 것 같다. 돈이 없으면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의 욕구나 동기보다 돈을 버는 행위가 우위에 설 것이다. 나 또한 지난 10년간 이 시스템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지난여름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은 정말 살만했다. 나름 모아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직장에 나가 일을 할 때 나는 여가를 즐겼다. 하지만 이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모아둔 돈은 떨어지고,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숨만 쉬어도 지출되는 돈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벌이였다. 그렇다고 일하는 시간을 늘리거나 새로운 직업을 구하지도 않았다. 무슨 똥고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잘 짜여진 사회적 시스템에 반항하고 있다. 그리고 반항의 대가는 생계의 위협과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요즘 들어 많이 고민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의미였다. 그러다 문득 느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미는 돈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물음이었다. 이는 모두가 돈을 최고로 여긴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장 쉽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꼭 연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만나 어떤 행위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주말을 기다린다. 평일의 고된 근무를 버티며 주말에 놀러 갈 곳을 찾거나 약속을 잡는다. 그리고 이러한 여가생활은 돈을 버는 원동력이 된다.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노동의 시간을 감내하고, 노동 후 여가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소비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처럼 손쉬운 순환구조는 삶에서 거대한 의미를 만들어내지 않고도 삶을 그럭저럭 살만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이 구조에서 이탈했다.

나는 이 순환구조에서 공허함을 느꼈다. 주말에 약속을 잡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히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 이면에 조금씩 공허함이 자리 잡았고, 그 공허함은 내가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물음을 던졌다. 적어도 돈은 아니었다. 돈은 뭐랄까 화려하지만 알맹이가 비어있는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이는 돈처럼 거대하진 않더라도 알맹이가 가득 찬 무언가를 찾게 만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그 순환구조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러니 지금처럼 외로움에 허덕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을까? 만약 내가 외로움에 굴복했다면 다시 자본주의의 순환구조로 들어갔을 것이다. 아무리 취업률이 저조하고 실업자가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일용직 근로나 공장에는 여전히 사람을 필요로 한다. 즉, 내가 돈을 벌고자 했다면 어떻게든 다시 자본주의 사회로 기어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러한 시스템을 거부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의 늪에 빠져있을수록 삶의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이러한 고민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회적 시스템의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는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 느끼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다. 우리는 삶에서 꼭 이루어야 하는 단일의 목적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수도권이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사회는 이러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독촉한다.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것,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 자가를 매매하지 못하는 것은 도태된 삶이라는 프레임에 가둔다.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이 구조는 행복의 조건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정말 행복의 조건인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적어도 행복의 조건은 공통의 진리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정답'이란 것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외로움에서 도망치지 않고 삶의 부조리한 현실들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측면을 향하게 된다. 잘 짜여진 사회적 시스템에서 벗어났을 때 삶의 날 것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이는 어떠한 선택을 행할 때 그 선택의 동기에 있어 사회적 지위, 명예, 타인의 평가, 자본의 영역을 배제시키게 만든다. 이처럼 나의 존재 이외의 모든 것을 배제시키면 선택이 두려워진다. 내가 선택한 것에 있어 남 탓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외로움을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게 만든다. 모두가 향하고 있는 삶의 방향에서 이탈해 나만의 방향을 나아가고 있다는 거대한 소외감은 여전히 나를 외롭게 만든다. 아마도 평생을 이처럼 살아가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기회에 삶의 다양한 측면을 느껴보고 싶다. 돈이 없어 누구도 만나지 못하는 거지 같은 삶의 경험 이후에 마주하는 타인은 그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텅 빈 주머니는 공허함을 이기려 아무나 만나 소비하는 잡담 대신 나와 대화하게 만든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럽고 슬프다. 하지만 아직은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이 서러움이 날 죽이진 못했다.

끝으로 자본주의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가를 보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모두 향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밝은 측면 반대의 어두운 측면도 함께 바라보았으면 하는 나의 작은 소망이다. 나도 결국에는 다시 자본주의에 합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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