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기원, 나아갈 소망

최초의 흔적

by 청명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무언가를 향해 왔다. 일화들 하나하나가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삶을 생생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를 좇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늘 새로운 장난감을 찾으려 애썼으며,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발견하면 그 어느 때보다도 몰입하여 놀이를 즐겼다. 예를 들면, 그 당시 유행했던 디지몬 다마고치가 떠오르는데, 난 잠에 들기 전까지 다마고치를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게임 내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기 위해 늘 애썼다. 나의 그런 태도는 수단과 형태만이 바뀔 뿐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느낀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친 방학에는 학교도 가지 않고, 학원도 다니지 않았기에 어쩌면 인생 처음으로 공허를 느끼기도 했다. 늘 놀이로 가득 찼던 나의 삶 속에서 점차 학업을 우선시해야 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고, 유년기 시절 대부분을 함께한 친구가 이사를 가며 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기 시작했다.



기억나기로는 내가 경험하는 공허는 혼란과도 같아 그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당시 유행하는 게임기를 사고자 하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학생이 돈이 어디 있겠는가, 당시 사회생활을 하고 있던 친누나에게 게임기를 사 달라 조를 수밖에.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냉정했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심심하다는 이유로 게임기를 사달라는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사회적으로는 지당한 말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당시 나에게 게임기는 공허의 압도 속에서 방황하던 내게 한 줄기 빛과도 같았기에 상당히 큰 좌절로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에도 난 곤충을 키우며 네이버 카페에 사육기를 작성하기도 했고, 핑거 보드에 빠져 여러 기물을 만들기도 했으며, 셔플이라는 춤에 빠져 제법 오랜 시간 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만약 당시 내가 최신형 컴퓨터를 갖고 있었다면, 하루 종일 게임에만 몰입했을 것이다. 그 당시 집에 있던 PC는 제대로 된 게임 하나 돌아가지 않는 구형 PC였기에 난 게임이 아닌 여러 활동에 몰입하려 발버둥 쳤다. 아직 온전한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10대 초~중반의 나에겐 당시 몰입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자 이유였으며,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에 경험한 공허를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이 특유의 방황은 나의 기질이기도 했으며, 곧 내가 살아온 방식은 아닐까 한다. 성인이 되어 모두가 전공 혹은 상황에 맞게 진로를 탐색해 나갈 때, 나는 무작정 알바만 하며 여행을 다녔다. 그 여행의 목적을 나의 진로를 탐색하기 위함이라 선언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단지 시시한 삶을 살기 싫다는 신념 위에서 걱정과 한심함으로 둘러싼 시선을 애써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으려 곁눈질만 했을 뿐이다. 그렇게 무엇 하나 제대로 일궈내지 못한 나를 변호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 발만 담갔지만, 세월의 흐름은 발을 담그는 행위 만으로는 더 이상 나를 변호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난 지금도 삶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다.



최근 이러한 흐름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 비교적 삶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왔다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돌아보면, 어린 시절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놀기 위한 행위들로 보였던 것들이 놀이 이상의 삶에 대한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지금과 형태만 바뀌었을 뿐. 향해야 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는 몸부림은 같았다. 지금의 내가 느끼고, 마주하고, 써 내려가는 모든 유영의 행위들은 어쩌면 중학교 1학년 시절에 경험한 공허로부터, 더 나아가서는 몰입할 수 있는 장난감을 찾았던 유년기 시절의 애씀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과정을 멈추지 않고 이어왔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역시 글을 통해 나를 향한 걱정과 염려에 침습당하지 않으려 성벽을 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입장에서, 내가 지각하는 세계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변호하는 행위 자체 또한 내가 살아온 그 방식 자체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느낄 때면 비교적 편안한 마음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삶 속에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집을 부리는 것은 오직 나만이 가능한 일이기에, 걱정과 염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외로움 그 자체인 나라는 존재가 타인과 함께 세상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나의 고집에 대해서도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늘 일기를 쓰고, 고민하며,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을 글로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유영의 기록을 세상 밖에 꺼내보려 한다. 나의 유영의 기록이 누군가의 길잡이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동세계라는 하나의 바다 위에서, 덮쳐오는 파도에 무너지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나의 몸부림이 유영의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