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지고, 벗겨진

기록 01

by 청명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요즘. 큰 불만은 없지만, 이따금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무인 카페에 홀로 앉아 무언가를 지독하게 탐구하던 내가 떠오른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이 끝나도 태양은 가장 높은 곳을 가리켰다. 일터를 나와 카페로 향하는 길은 모든 것이 녹아내릴 것 같던 한여름. 그 지독한 태양이 축복이자 저주였다. 마치 나를 감싼 껍데기를 녹여 없애버리는 기분이 들게 했다. 강렬한 열기들로 녹아내린 허물을 빠져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빠져나갈 수분을 다시금 보충한다. 아무런 목적 없이 패드를 꺼내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읽었다. 일련의 그 과정은 마치 신성한 의식과도 같았기에 평일이라면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나날들.

흐릿해지지 않는 그 시절의 기억들은 내게 긴장이 된다. 내게 새겨진 저주를 잊지 말라는 듯 평온한 일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속삭인다. 그 신성한 의식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실패가 날 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하게 존재했어야 할 유영의 여정이라 단호하게 말한다. 누군가가 그 여정을 부정하려 한다면, 난 그자를 응시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신성하다는 단어를 앞에 얹었다. 누군가를 응시한다는 것은 생명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에.

시선이 향할 자유가 있었다. 그 자유가 내가 서있는 곳이기도 했다. 바람에 굴하지 않았다. 태양에 굴하지 않았다. 구태여 포기함에 손을 얹기도 했다. 누군가의 시선이 내게 큰 두려움이 될 수 없었다. 그보다 거대한 두려움이 항상 내 안에 도사리고 있었기에. 그래서 지독한 탐구를 이어나갔을 것이다. 냉기 속 온기를 느끼듯이 자꾸만 서러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냉기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사라지는 내게 온기를 뺏기면서도, 껍질 안에서 기다리던 내게서 체온을 느끼기도 했다. 점차 내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런 맛도, 아무런 향도, 아무런 특징도 없는 무어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게 무어라 부를 수 없는 것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 지금이다. 때문에 난 지금도 그 시절의 태양을 느끼곤 한다. 바람을 기억한다. 아니, 그 바람을 맞는다. 인간의 오감이라는 표현이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듯 그 시절에 거한다. 때문에 난 긴장되면서도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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