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기록02

by 청명


내가 서있다. 느낀다. 그것이 나다. 두 손을 뻗고, 두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세계를 담고, 느끼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손을 올린다. 바람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세계의 소리를 담는 두 귀를 통해 듣는다. 윙윙 울리는 것이 느껴진다. 코를 통해 저 멀리서부터 품어진 것을 맡는다. 느껴진다. 가장 분명한 것이 있다면 느껴진다는 것이다. 계산이 서기 전, 어쩌면 해석되기 이전의 것들. 그 속에서 심장이 뛴다. 박동 또한 느껴진다.

발걸음을 옮긴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떨린다. 바람이 훑고 지나간 손바닥이 미끄럽다. 무언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잠시 잊고 있던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과거라는 상자에 묻어놓은 세계관을 들추기 시작한다. “아 저것은 이전에 보았던 것이다.” 나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지만 멈추어 버린다. 눈과 귀가 문을 닫는다.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난 다시 그것을 찾으려 또다시 기계에 연료를 주입한다. 연료가 퍼지자 느낌에도 연료가 주입된다.

이미 너무나도 오래 반복해온 습관이다. 난 태초의 느낌을 정의 내려 버렸다. 명명을 다시 잊으려 애쓰는 과정에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유영’이라 명명했다. 더 이상 그 무엇에도 붙잡히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오늘도 불완전한 흘러감 위에 있다. 다만, 손을 잡고. 그 손에는 연료를 주입할 수 없다. 맞닿는다. 스친다. 살과 살의 경계를 느끼면서도, 느껴지지 않는 진공 속에서 잠시 기계가 작동을 멈춘다. 잠시. 내가 있다.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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